본질적 문제는 하드웨어 성능
결국 VR 구조조정 후 AI 회귀
관련 산업 기술 중요성 알려줘
2021년 10월, 미국의 페이스북사는 사명을 메타로 변경했다. 앞으로 메타버스가 크게 유행할 것이므로 전사가 메타버스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사명 변경을 통해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난 2024년 4분기, 메타의 재무적 실적은 실망스러웠다. 회사의 전체 매출 중 96% 이상은 광고 매출로, 메타버스 관련 매출은 4%가 되지 않았다. 메타버스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메타는 미국 최고의 인재를 갖춘 IT 대기업이지만, 그런 기업조차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는 없다. 메타가 고려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는 가상현실 구현의 핵심 수단인 하드웨어의 발전 상황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은 메타버스를 VR 기기를 머리에 쓴 채 몰입형으로 즐길 수 있는 그래픽 좋은 게임 정도로 생각했다. 메타는 오랫동안 VR 기기를 연구·개발하고 판매해 왔다. 메타버스 유행은 메타에는 VR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끌어올릴 큰 기회였을 것이다.
문제는 VR 기기는 근본적으로는 독특한 모양의 컴퓨터일 뿐이라는 것이다. VR 기기는 입출력장치와 출력장치 처리장치 등 컴퓨터의 구성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일반 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이용해 만든다. 그저 모양이 안경처럼 생겼고 외부 전원 대신 배터리를 통해 구동될 뿐이다.
사람들이 메타버스에 기대했던 몰입 가능한 화려한 그래픽은 메타가 사명을 바꾸고 메타버스에 집중한다고 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화려한 그래픽은 VR 기기 회사가 아닌 엔비디아, AMD와 같은 반도체 회사들이 해결할 문제였다. 하지만 두 회사는 당시 인공지능용 고성능 반도체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고, VR을 위해 낮은 전력으로 화려한 그래픽을 만들어내는 반도체는 개발하고 있지 않았다. 메타는 반도체 회사가 아니니 스스로 반도체를 만들 수도 없었다.
2023년 출시된 메타의 VR 기기는 퀄컴사의 칩을 사용했는데, 이 칩의 그래픽 처리 능력은 2020년에 출시된 PC용 그래픽 처리 반도체 RTX 3080의 30분의 1 정도 성능에 불과했다. RTX 3080조차 현실 같은 VR용 그래픽을 구현하기 버거워하는 상황이었으니, 메타의 VR 기기 역시 훌륭한 그래픽을 제공할 수는 없음을 짐작 가능하다. VR 기기 기반의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시중에 판매되는 VR 기기가 높은 수준의 그래픽을 제공하지 못하니, 게이머들을 끌어들일 만한 게임을 만들 수도 없었다.
이런 한계는 출시된 앱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메타는 2021년 호라이즌 월드라는 메타버스 앱을 출시하였다.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까지 나서 대대적인 앱 홍보를 벌였으나, 실망스러운 품질로 목표였던 동시 접속자 50만명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출시 뒤 앱의 그래픽은 큰 혹평을 받았고, 메타버스 사업 부진의 여파로 주가가 24%나 하락하는 날도 있었다. 결국 2025년 4월, 메타는 VR 사업을 구조조정하고 다시 인공지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메타버스가 겪는 어려움은 우리가 기술을 공부할 때 관련 기술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21세기의 대표적인 혁신 발명품 중 하나는 아이폰이다.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가 고안했지만, 아이폰이 등장하기 위해선 고밀도 배터리와 터치스크린, 효율 높은 반도체가 필요했다. 이 요소들은 애플이 직접 만들 수 없었고 삼성전자와 같은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전자기업만이 만들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조차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메타도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메타버스에도 빛이 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럴 땐 막연하게 인공지능 신기술의 혁신성만 믿고 메타버스의 성공을 확신하기보다는 메타버스가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 중, 지금의 인공지능이 해결해 줄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자문해 보자.
정인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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