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33년 만에 국내 미등록 특허(국외에서 등록됐으나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 사용료에 대해 과세권을 인정받게 됐다. 그간 원심이 줄곧 한국에서 국내 미등록 특허의 ‘사용’을 상정할 수 없다며 과세권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이를 뒤집고 국내 미등록 특허 사용료를 국내원천소득으로 판단하면서다. 현재 진행 중인 과세 불복 등의 세액이 4조원이 넘는 만큼 국가 재정 확충 측면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8일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를 상대로 낸 경정거부처분취소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국가 승소 취지로 수원고법에 파기 환송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미국 법인 A사의 특허를 사용하고 사용료를 지급해왔다. 문제는 SK하이닉스가 특허 사용료를 지급하면서 A법인의 법인세를 원천징수해 이천세무서에 납부하면서 불거졌다. A법인은 이에 SK하이닉스를 통해 한국에 법인세를 내야 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고, 원천징수 의무자인 SK하이닉스는 과세당국을 상대로 이미 낸 세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원심은 특허속지주의 법리상 국내 미등록 특허는 한미 조세조약상 원천지국 과세권 행사의 전제인 ‘우리나라에서의 사용’을 상정할 수 없어 국내 원천소득이 아니라며 SK하이닉스 손을 들어줬다. 특허속지주의란 ‘특허는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내용의 특허 보호에 관한 법리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한미 조세 협약에 의하더라도 우리나라가 원천지국으로서 세금을 매길 수 있다”면서 원심이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면서 향후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미국 기업의 특허에 대해 법인세를 원천징수할 수 있게 됐다. 1992년 첫 과세당국 패소 판결 이후 33년 만에 미국 미등록 특허에 대한 과세권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불복 등 세액만 해도 4조원을 넘는데, 이번에 판례 변경이 되지 않았다면 모두 국외로 지급돼야 할 세금이다. 국세청은 “우리 기업들의 특허 사용료 지급은 현재 불복 중인 사업연도 이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수십조원의 세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판례를 변경하기 위해 본청과 지방청이 참여하는 미등록 특허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미등록 특허 과세권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다. 1979년 발효된 한·미 조세조약의 체결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976년 당시의 입법자료까지 찾아 새로운 대응 논리도 마련하기도 했다. 패소가 거듭되자 한미 조세조약이 정한 특허 사용 개념을 확실히 하기 위해 법령 조문을 정비한 점도 긍정적 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해외 출장 중인 임광현 국세청장은 이날 국세청이 승소했다는 소식에 “국세청의 저력을 보여주는 성과”라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임 청장은 “앞으로도 국세청은 국부유출을 방지하고 정부의 정책 추진에 밑바탕이 되는 국가 재원 마련을 위해 정당한 과세 처분을 끝까지 유지하고 국내 과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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