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올린 20대 산모는 “살인 공모 안 해”
2019년 낙태죄 헌법 불합치, 형사처벌 조항無

임신 36주차 산모를 대상으로 임신중절(낙태) 수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병원장과 집도의가 첫 재판에서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낙태 수술을 받은 산모는 “낙태 목적으로 시술을 의뢰해 태아가 사망하는 것은 맞지만 살인을 공모한 사실은 없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18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병원장 윤모(80)씨와 집도의 심모(61)씨, 산모 권모(26)씨 등의 첫 공판을 열었다.
이날 윤씨와 심씨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원에 환자를 알선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브로커 2명도 모두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낙태 수술을 받은 산모 권씨 측은 “낙태 목적으로 시술을 의뢰해 태아가 사망한 것은 맞지만 살인을 공모한 사실은 없다”며 “태아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모르고, 살인이 발생했더라도 고의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대부분이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오는 11월 13일로 예정된 두 번째 공판기일을 마지막으로 재판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해 6월 산모 권씨는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낙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36주차의 태아는 신생아와 거의 비슷한 체형과 발달을 보인다. 시각, 청각, 촉각뿐 아니라 폐 기능이 완전히 발달해 스스로 호흡할 준비도 마치는 단계다. 때문에 살인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고,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결과 윤씨가 고령으로 수술을 집도할 수 없자 지인을 통해 알게 된 60대 대학병원 의사 심씨에게 권씨의 수술 집도를 맡겼다.
이들은 권씨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해 태아를 꺼낸 뒤 준비해 둔 사각포로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윤씨는 허위진단서 작성·행사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권씨의 진료기록부에 ‘출혈 및 복통 있음’으로 건강 상태를 허위로 기재해 태아가 사산한 것처럼 꾸몄다. 또 허위 사산증명서를 발급해 화장대행업체와 화장시설 등에 두 차례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병원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낙태 수술을 통해 수입을 얻기로 마음먹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씨는 관할 관청으로부터 입원실과 수술실, 회복실 등을 폐쇄하는 내용의 변경 허가를 받은 뒤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일반 입원 환자는 받지 않고 낙태 환자만 입원시켰다.
그는 브로커 2명으로부터 낙태 희망 환자 527명을 소개받고 수술비 14억6000만원을 취득했다. 심씨는 건당 수십만원의 사례를 받고 수술을 집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지난 7월 윤씨에게 살인, 허위진단서 작성 및 행사,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집도의 신씨와 산모 권씨는 살인 공범 혐의로 각각 구속·불구속 기소됐다. 환자를 소개해 수수료 명목으로 3억1000만원을 취득한 브로커 2명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다만 검찰은 윤씨 등을 기소하면서도 불법 낙태 수술 자체에 대해선 범죄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임신 24주를 넘는 낙태는 불법이지만,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처벌 규정이 없는 상태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