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 등 고전 비극 재해석
배우 전혜진, 10년 만에 연극 복귀
영웅 헤라클레스의 고향이자 오이디푸스가 왕이었던 테베. 수많은 신화와 비극을 품은 고대 도시 테베를 무대로 한 5부작 연극 ‘안트로폴리스’를 국립극단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2023년 2주 간격으로 다섯 편이 순차 공개되며 관객 갈채와 평단 찬사를 모두 받은 화제작이다.
현역으로는 독일 최고로 손꼽히는 극작가 롤란트 시멜페니히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고전 비극을 바탕으로 하되, 잃어버린 부분을 새롭게 상상해 서사를 확장했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을 새로운 언어로 각색하고 갓난 오이디푸스를 버린 아버지 ‘라이오스’, 전쟁을 막으려 애쓰는 ‘이오카스테’처럼 제목만 남고 내용이 소실된 영역을 독자적으로 복원했다.

그래서 제목부터 ‘인간(anthropos)’과 ‘도시(polis)’를 결합한 ‘안트로폴리스’로, 문명사회 속 공동체로서의 인간 모습을 다룬다. 프롤로그·디오니소스→라이오스→오이디푸스→이오카스테→안티고네·에필로그의 시간순으로 이어지며, 디오니소스·오이디푸스·안티고네 같은 익숙한 인물과 함께 라이오스·이오카스테 등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인물을 동일한 비중으로 재배치한다.
10월10일부터 26일까지 윤한솔 연출이 이끄는 서막 격인 제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테베 건국 신화와 에우리피데스 ‘바쿠스의 여신도들’을 엮어 권력과 억압, 개인의 자유·정체성을 전면화한다. 테베 왕가의 건국과 탄생 과정을 소개하고 제우스와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자신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들을 벌한다. 디오니소스가 신으로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펜테우스를 처벌하는 과정은 집단적 욕망과 광기로 얼룩진 인간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고대의 폭력이 오늘의 사회 구조와 맞닿아 있음을 환기한다. 18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5인 라이브 연주자가 배우들과 호흡해 광기에 취한 축제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11월6일부터 22일까지 공연되는 김수정 각색·연출의 제2부 ‘라이오스’는 1인극이다. 배우 전혜진이 10여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해서 라이오스·이오카스테·피티아·시민들의 목소리를 오가며 시적 독백으로 테베의 기원을 증언한다. 케밥 가게·오토바이·인스타그램 같은 현대적 장치가 극 곳곳에 삽입돼 고대 신화의 현재성을 부각한다. 베를린 테아터트레펜 2024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돼 동시대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내년에 나머지 3부작까지 모두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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