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내란 청산은 악행 청산하자는 것”
‘계엄의 강’ 못 건너는 국힘에 경고장
‘尹 재판 침대축구’ 발언에 고성 오가
일부 野의원은 항의성으로 자리 떠나
조국혁신당 “시대적 과제 제시” 평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첫 여야 대표 회동을 한 지 하루 만인 9일 “내란 세력과의 결별”을 국민의힘에 촉구한 것은, 야당이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구속 이후에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하며 여전히 ‘계엄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 대표의 발언에 국민의힘 의원들 일부는 연설 도중 나가는 등 강한 반발 의사를 보였다.
◆‘내란’은 26회, ‘협치’는 ‘0’
정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중점 강조한 것은 ‘내란 청산’ 필요성이었다. ‘국민’(80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언급한 단어가 ‘내란’(26회)이었다. 이외에도 ‘민주주의’(18회), ‘개혁’(18회), ‘평화’(18회), ‘청산’(17회), ‘헌법’(17회) 등을 거론하며 계엄의 위법성과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22회), ‘이재명정부’(20회), ‘경제’(16회)를 언급하며 이재명정부의 성과를 알리는 데도 집중했다. 반면 ‘협치’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 대표의 강경 발언에 본회의장 반응은 두 쪽으로 쪼개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 대표의 연설이 진행된 약 50분 동안 46회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반면 국민의힘의 반응은 차가웠다. 야당은 정 대표가 연설에 앞서 허리 숙여 인사했음에도 받아주지 않았고, 연설 중 박수도 치지 않았다.
정 대표가 내란을 언급하면서 여야 간 대치는 격화했다. 정 대표가 “내란 청산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분단을 악용하고, 정의의 가면 뒤에서 저질렀던 악행을 청산하자는 것”이라고 말하자 국민의힘은 “내란이 왜 나오냐”고 항의했다. 민주당 의석에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비난이 나오자 국민의힘은 “미국 대사관에 누가 갔냐”, “반미 테러리스트”, “반미 좌파”라고 정 대표를 저격했다.
정 대표가 “언제까지 내란당의 오명을 끌어안고 살 것이냐. 이번에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자 국민의힘은 “폄훼하지 말라”고 항의했다. 정 대표가 “야당이 건강해야 여당도 건강할 수 있다. 건강한 야당으로 돌아오라”고 말하자 일부 야당 의원들은 항의의 뜻으로 자리를 뜨기도 했다.

정 대표가 “피고인 윤석열의 재판은 침대 축구처럼 느리다”고 발언한 대목에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재판이 침대 축구다”, “이재명은 언제 재판받나”고 맞받았다. 민주당 의원들이 “듣기 싫으면 나가라”고 고성을 지르자 정 대표는 “양쪽 다 조용히 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중재에 나섰다. 그러고선 “국민의힘 의원들께 부탁드린다. 일단 들어보라. 다 뼈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정 대표가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과 한·미 정상회담 등 이재명정부의 성과를 치켜세우자 “거짓말하지 말라”거나 “아무 말 대잔치”라며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누가 구시렁거리냐”, “대쪽 같은 말이다. 새겨들어라”라고 반발하며 양측이 또 한 번 옥신각신했다.
◆“윤어게인 외치면 협치 어려워”
정 대표는 취임 이후 줄곧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았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즐겨 인용하며 ‘내란 세력 척결’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정 대표의 국회 집무실 앞 복도에는 민간인 신분으로 계엄 모의를 한 것으로 조사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 주요 내용이 게시돼 있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진보 진영 인사들을 불법 체포해 배에 실은 뒤 해상에서 폭파한다는 등의 계획이 담겨 있는 ‘노상원 수첩’의 일부다. 정 대표가 3대(검찰·언론·사법) 개혁 못지않게 ‘내란 극복’을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대표는 지난 1일엔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적 변곡점에 놓여있다”며 “흡사 해방정국 반민특위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그때 친일파 척결이 시대적 과제였다면, 지금은 내란 세력 척결이 시대 정신이고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이미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계엄의 위헌성과 불법성 판단은 끝났다”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안을 두고 야권에서 윤어게인(Yoon Again·다시 윤석열)을 외치면 우리로선 협치의 상대방으로 그들을 인정하기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은 정 대표의 연설이 “시대적 과제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의 ABCDEF(인공지능·바이오·문화·방위산업·친환경·제조업) 성장 정책을 뒷받침하겠다는 정 대표의 언급에 대해선 ‘사회권 보장’을 뜻하는 ‘G’를 덧붙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는 주거·건강·노동·교육권 등 국민 기본권을 확대·보장하는 복지 선진국을 만들자는 것으로,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제시한 정책 지향점이다. 혁신당 백선희 원내대변인은 “개혁과 사회권 확대가 동시에 이뤄질 때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가 완성된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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