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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이어 태국 남자배구의 아버지가 된 박기원 감독…“70대 중반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 배구가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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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03 13:10:15 수정 : 2025-09-03 14:28:59
용인=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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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도전을 기피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라며 현실에 안주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영광과 성과에 집착해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주저하는 게 보통이다. 노화는 이러한 마음의 틈 사이로 살금살금 들어온다. 그런 의미에서 태국 남자배구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박기원 감독은 여전히 청춘이다. 아니 영원히 청춘일지도. 그의 생물학적 나이는 7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어 노화가 찾아올 틈이 없다. 박 감독은 여전히 세계배구의 트렌드를 살피고, 젊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매일 고민과 공부를 놓치지 않고 있다. 태국에서 잠시 귀국해 한국 나들이에 나선 박 감독을 최근 용인 기흥에서 만나 배구 이야기를 나눴다.

 

2016~2017시즌을 앞두고 대한항공 감독으로 부임한 박 감독은 2년차인 2017~2018시즌에 대한항공의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선물했다. 2019~2020시즌을 끝으로 대한항공 지휘봉을 내려놓은 박 감독은 이후 아시아배구연맹(AVC) 코치위원회 의장과 국제배구연맹(FIVB) 기술 및 지도위원회 10인 중 한 명으로 활동하다 지난 2023년 2월 태국 남자배구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FIVB가 배구 약소국에 대한 코칭 지원 프로그램으로 박 감독이 직접 태국 남자배구를 지도하게 된 것이다.

전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는 여자배구에 비해 태국 남자배구는 상황이 열악하다. 세계적인 경쟁력도 그렇다. 태국 여자배구의 세계랭킹은 18위로, 아시아 무대에서도 강호로 꼽히는 반면 남자배구는 58위로 아시아에서도 제대로 된 성적을 낸 적이 없다. 이런 흐름이 자연스레 대표팀 운영에서도 남녀 대표팀 간의 차별이 크다. 여자배구는 연령별 대표팀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남자 대표팀은 그렇지 않다. 박 감독은 “대표팀을 소집했는데, 어떤 선수는 3일 뒤에, 또 다른 선수는 4일 뒤에 대표팀에 오더라. 이유를 물었더니 학비를 지원받으며 대학교를 다니고 있어 대학배구 대회를 뛰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더라. 알아보니 태국배구협회조차 대학배구에 대한 강제력이 없었다. 이런 부분을 뜯어고치는 게 먼저라 생각해서 규율을 강화하고, 선수들이 배구 자체와 국가대표에 임하는 자세부터 바로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뒤가 없다는 마음으로 태국배구협회, 클럽 팀들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태국 남자대표팀 강화에 나섰다. 그는 “외국인 감독들이 평생 그 팀에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팀의 미래보다는 당장의 성적을 위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팀 전체를 보고 선수들의 포지션을 바꾼다거나 필요한 선수를 길러내기 보다는 현재 선수 구성으로 팀을 운영하곤 한다. 선수들 역시 그게 더 편하기 때문에 그런 외국인 감독을 선호한다”면서 “난 그렇게 팀 운영을 못 한다. 필요한 선수는 개조해서라도 만들어 쓰고, 선수 특성에 맞게 포지션도 바꿨다. 선수들의 평소 기량을 보기 위해 클럽 경기도 수시로 보러 다녔다. 각 클럽의 국내 스케줄을 미리 다 받아서 비는 중간 중간에 훈련 스케줄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안 부딪힐 수 있나. 지금도 클럽팀 감독 1~2명과는 사이가 소원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인데.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일했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이 오로지 팀을 강하게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열정을 불태운 효과는 금방 드러났다. 2023년 AVC 챌린지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24년엔 동남아국가 간의 리그인 SEA V리그 1,2주차 대회를 모두 무패 행진으로 정상에 올랐다. 박 감독에 대한 태국배구협회의 신뢰는 나날이 두터워졌다.

박 감독이 이렇게 배구를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은 딱 하나. 끊임없는 공부다. 그는 “공부 안 하면 오래할 수 없다. 세계 배구는 지금도 바뀌고 있다. 똑같은 걸 가르쳐도 요즘 젊은 애들을 설득하려면 시대에 맞게끔 변화를 줘야 한다. 그러려면 항상 세계 배구에 안테나를 쫑긋 세워놓고 보고, 배우고, 메모해야 한다. 아이들이 아무리 예쁜 인형을 선물로 줘도 며칠 가지고 놀면 지루해하듯, 배구 선수들도 똑같다. 지루해 하지 않고 계속 따라오게 만들려면 훈련 프로그램도 바꾸고, 접근법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요즘도 매일매일 고민 한다”라고 말했다.

 

세 시간에 걸치 다양한 배구 관련 대화 속에서 박 감독이 얼마나 세계 배구 트렌드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박 감독은 “언제까지 사이드아웃(상대 서브권 때 득점하는 것) 배구를 할 건가. 이제 세계 배구는 블로킹이나 수비로 상대 공격을 걷어올려 반격 상황 때 어떻게 공격을 만드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속공 역시 빠르게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언제든 상대 블로킹이 붙는다는 전제 하에 속공수의 높이와 공격 각도를 제대로 만들어주는 토스을 올려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건, 박 감독의 배구 인생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1979년 한국에서 최초로 이탈리아리그에 선수로 진출한 박 감독은 1981년부터 20여년간 이탈리아 무대에서 지도자로 활약했다. 2002년부터는 아시아 배구에서도 변방이었던 이란 대표팀 감독에 취임해 이란 배구를 아시아 최강, 세계 강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 현재 한국 배구인 중 현장 지도와 세계 배구계 행정까지 두루 거친 이는 박 감독이 유일하다.

매년 태국 남자배구 대표팀 사령탑 계약을 경신하고 있는 박 감독의 올해 남은 목표는 오는 12월 방콕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안 게임(SEA GAME) 우승이다. 이 대회는 ‘동남아의 올림픽’이라 불릴 정도로 동남아국가 간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대회 준비를 위해 박 감독은 11일 태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는 태국 생활도 이제 적응이 다 됐다. 박 감독은 “태국에서 지내는 건 괜찮다. 무엇보다 내가 이 나이(74세)에도 하고 싶은 일을, 잘 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죠. 내일 좋아하는, 평생 업이자 취미인 배구를 60년이나 하고 있다는 게 운도 많이 따르는 것 아닐까 싶다”라며 웃었다.

“태국에서 주말에 혼자 있을 때마다 문득 외롭다는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가 됐다. 어떤 소임이든 맡겨진다면 한국 배구를 위해 즐겁게 일하고 싶다. 여전히 배구는 즐거우니까”


용인=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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