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C의 베테랑 포수 박세혁(35)은 울컥했다. 2군에서 1군 콜업의 날을 기다리며 매일 땀 흘리는 후배들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준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부상과 부진으로 1군 주전 포수 마스크를 까마득한 후배에게 내줬지만, 박세혁은 다시 힘차게 스윙을 돌렸고 마침내 1군에서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박세혁은 지난 2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5 KBO리그 KT와의 원정 경기에서 4-4로 맞선 5회 이날 승리에 디딤돌이 된 결승타를 때려내며 NC의 9-4 승리를 이끌었다.
사실 이날 박세혁이 선발 포수로 나선 게 아니었다. 이제는 NC의 주전 안방마님으로 올라선 김형준이 1회 선발 김태경의 공을 블로킹하는 과정에서 오른 손목 타박상을 입었다. 그러자 이호준 감독은 급하게 베테랑 박세혁을 호출했다. 갑작스런 출전이었지만, 1군에서만 1000경기 가깝게 뛰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박세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1회 시작하자마자 아웃카운트 없이 홈런 두 방을 맞으며 4실점한 선발 김태경을 다독였고, 김태경이 1.1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간 이후 올라온 6명의 불펜 투수들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나머지 7.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냈다.


무리없이 포수 수비를 소화한 것만 해도 감사할 지경인데, 이날 박세혁은 방망이로도 제 몫을 다 해냈다.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타점 1개는 5회 4-4 동점 상황에서 ‘NC 킬러’ 고영표를 무너뜨리는 한 방이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고영표는 올 시즌 NC전에서 3경기 등판해 2승 무패 평균자책점 0.56을 기록 중이었다. 게다가 고영표의 주무기이자 KBO리그 대표 마구로 손꼽히는 체인지업을 공략해 뺏어낸 적시타였기에 더욱 값졌다.
박세혁은 올해 1군보다 2군이 더 익숙했다. 지난 5월말 훈련 도중 느낀 허리 통증으로 1군에서 제외됐다. 부상을 잘 다스렸지만, 이미 1군에는 박세혁의 자리가 없었다. 김형준이 주전 포수, 안중열이 백업 포수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 그러던 중 지난달 16일에야 1군 부름을 받았다. 78일 만의 1군 복귀였다.
1군 복귀 후에도 박세혁의 주 임무는 백업 포수였다. 간간히 출전하다 보니 타격감이 잡힐 리 없었다. 그러나 모처럼 선발 출전급의 기회가 주어지자 멀티히트에 결승타, 탄탄한 포수 수비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뒤 수훈선수로 취재진과 만난 박세혁의 표정은 밝았다. 중저음의 낮은 톤으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를 털어놨다. 사진을 찍는 취재진에게 “잘 찍어주세요. 그동안 바보처럼 나온 사진이 많았어요”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결승타와 멀티히트에 대해 묻자 박세혁은 “정타는 없었는데...”라고 입을 뗀 뒤 “요즘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 코치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평소 지론이 훈련을 많이 할수록 운이 따른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다. 이번에 좋은 결과가 나와서 좀 더 확신을 갖고 더 많은 훈련을 해야겠다”라며 웃었다. 이어 2회 첫 타석에서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기 전까지 파울 5개를 연달아 때려내며 끈질긴 승부를 보인 상황에 대해 묻자 “2군을 다녀오면서 제가 해야할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다. 제가 홈런을 30개 때려낼 수 있는 타자도 아니니까요. 순위 싸움을 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베테랑으로서 팀에 도움이 되는 게 그런 끈질긴 모습으로 솔선수범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결승타를 때려낸 상황에 대해 묻자 박세혁은 “고영표 선수가 제일 잘 던지는 게 체인지업이고, 공 개수를 보니 5회가 마지막일 것 같았다. 그래서 제게 어렵게 승부하며 체인지업을 많이 던질 거라 생각했다. 마침 감독님도 타석에 들어가기 전 체인지업을 노려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말씀도 해주셨다. 그렇게 접근법을 갖고 타석에 들어섰고, 그 덕분에 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박세혁의 좌전 안타 때 2루 주자였던 박건우가 열심히 홈으로 쇄도했고, 뱅뱅 타이밍이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가 되면서 결승타가 될 수 있었다. 박세혁은 “(박)건우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해줬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뛴 정이 있어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줬나 싶기도 하고(웃음). 그런 게 팀워크라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 하나하나가 원팀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라고 팀 동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랜 2군 생활, 박세혁을 다시 일으킨 건 후배들의 한 마디였다. 박세혁은 “2군에서 만난 후배들이 제게 ‘선배님, 학생 때 팬이었습니다’, ‘선배님을 보면서 프로가 되기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해주더라. 그 말들을 들으면서 다시 동기부여가 되고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었다”라면서 “2군 선수들뿐만 아니라 2군 코칭스태프 분들과 프런트 분들이 모두 잘 챙겨주신 덕분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울컥한데, 정말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박세혁은 주전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경력도 있다. 두산에서 뛰던 시절, 양의지가 FA로 NC로 이적하면서 주전 포수를 맡았고 2019년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가을야구 초대장 남은 3자리를 두고 최대 7팀이 경쟁하는 이런 숨막히는 순위 경쟁 속에서 베테랑이 후배들에게 전한 메시지가 있다.
“독해야 되요. 진짜 독해져야 해요. 100경기 남은 것 아니고 이제 20경기 정도 남았잖아요. 이 남은 기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내면 3위까지도 가능한 상황이니까. 그렇게 쥐어짜내서 이뤄내면 성취감이나 뿌듯함이 어마어마할 거니까. 다들 독해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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