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미국산 장비공급을 전면 통제하기로 했다. 미 상무부는 29일(현지시간) 관보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공장을 장비반입 때 포괄적 허가를 해주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낸드 공장,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 D램 공장과 다롄 낸드 공장은 내년 1월부터 미국산 장비를 들여올 경우 미 정부로부터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를 막고 한국의 중국 의존도 견제하려는 의도가 짙다.
이번 조치가 시행될 경우 국내 기업의 중국 내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중국 공장은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낸드플래시의 40%, 하이닉스도 D램의 50%와 낸드의 30%를 생산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관련 매출도 각각 64조원, 13조원에 달한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며 중국은 우리의 반도체 최대 수출국이다. 미국발 관세 폭탄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중국 내 생산과 대중수출까지 망가지면 한국경제는 벼랑에 내몰릴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조치에 120일간의 유예기간을 뒀고 ‘현상유지’를 위한 장비반입도 허용했다.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기업과 긴밀히 조율해 민관의 모든 채널을 동원해 철회 혹은 적용 유예를 받아내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반도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이 반도체의 최혜국대우를 약속했다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사흘이 멀다고 말을 바꾸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다. 트럼프 정부는 반도체 보조금과 국내기업의 지분을 맞바꾸는 황당한 방안까지 거론하지 않았나. 트럼프의 돌발 요구에 단단한 대비가 필요하다.
국내 기업을 힘 빠지게 하는 진짜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기업들이 읍소해 온 주 52시간 예외적용과 보조금 지급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이래서는 국가대항전으로 번진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이 변방으로 밀려나는 건 시간문제다. 한때 초격차를 자랑했던 메모리반도체마저 중국의 거센 추격에 경쟁력을 잃고 있지 않나.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반시장·반기업 입법 폭주를 멈추고 경제살리기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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