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7일 영장 실질 심사를 받는다. 한 전 총리는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로서 위헌·위법인 비상계엄을 저지해야 할 헌법 수호 책무를 방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내란 특검은 그가 계엄 선포 직전에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고, 첫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후 선포문을 작성·폐기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전·현직을 통틀어 총리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50년 가깝게 화려한 공직 이력을 쌓아온 한 전 총리의 비극을 넘어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느닷없는 비상계엄의 피해자로 인식됐던 한 전 총리가 구속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계엄 진상규명 과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선포문을 받지 않았다고 강변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특검이 대통령실 폐쇄회로 TV를 통해 한 전 총리가 계엄 문건을 확인하는 장면을 증거로 확보하자 그제야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선포문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이러니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말리려 했다”는 그의 처음 주장도 믿기 어려워졌다. 내란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에는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와 국회 등에서 위증한 혐의도 추가됐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후의 처신도 온당치 못했다. 탄핵당한 윤 전 대통령의 측근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조치는 지나치게 정략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조기 대선을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권한대행이 느닷없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국민의힘 경선을 통해 선출된 대선 후보를 한 전 총리로 교체하려 했던 주축 세력은 친윤(친윤석열)계였다. 이런 일련의 비상식적 처신이 한 전 총리의 비상계엄 동조 의혹을 증폭시킨 것이다.
국무총리를 두 번씩 역임한 한 전 총리는 ‘직업이 정무직’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진보·보수 정부 가리지 않고 중용됐다. 그는 평소 공직자로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와 국민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헌정 체제의 위기가 엄습했을 때 보신에만 급급하다가 공직자로서의 명예를 훼손하고 급기야 피의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한 전 총리가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소명은 국민이 계엄의 진상을 정확히 알도록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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