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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베이징에서 본 기후 변화의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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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4 22:57:19 수정 : 2025-08-24 22:57:18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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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북방의 수도는 옛말
여름 폭우에 이재민 수십만
기후 경계선 이동에 피해 속출
韓도 마찬가지, 대책 서둘러야

베이징에 부임하기 전 먼저 중국 생활을 경험했던 이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은 “베이징은 건조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먼지가 많고 공기가 메마르니 집 안에서 가습기를 늘 틀어둬야 하는 것은 물론, 보습제도 항상 챙겨야 한다는 조언이 따라왔다.

실제로 겨울철에는 이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여름의 경우에는 생각과 크게 달랐다. 올여름 베이징은 연이어 쏟아지는 폭우에 신음했다. 인명 피해도 잇따랐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23∼29일 베이징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총 44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폭우로 이재민도 30여만명이 발생했고, 가옥 2만4000여채가 파손됐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비가 그친 뒤에도 7월 말 예정됐던 네이멍구자치구 출장이 철도 사정으로 연기되는 등 폭우 여파는 이어졌다. 이처럼 부임 전 예상했던 ‘건조한 북방의 수도’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과거 베이징은 북방 건조 기후의 상징이었다. 남방은 비가 많고 북방은 메마르다는 것이 중국 기후의 상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1961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전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10년당 5.1㎜ 증가했다. 베이징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장마기(6월1일~8월31일) 강수량은 최근 20년 중 최고치로 집계됐다. ‘눈·비가 오지 않는 베이징’이라는 말은 점점 옛말이 돼가고 있다. 이번 폭우는 단순한 예외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가져온 구조적 징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 북방의 습윤화는 단순히 날씨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대의 변화는 농업, 산업, 도시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베이징 일대 농촌은 과거 가뭄에 대비하는 작물 재배에 익숙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수자원 보전을 위해 2006년부터 베이징 지역의 쌀 재배를 금지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폭우와 침수 피해를 고려한 농업 방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망과 교통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폭우가 잦아지면 여름철 피크타임 정전이나 대중교통 마비가 빈발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베이징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남방의 폭염이 북상하고, 북방의 폭우가 증가하는 등 중국 전역에서 기후의 경계선이 이동하고 있다. 올해 네이멍구자치구와 허난성, 산시성 등 내륙 지방에서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큰 피해를 냈다. 중국 정부는 대도시 홍수 방어 능력 강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좀 더 나아가면 이런 현상은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지구 곳곳에서 기후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 북미의 대형 산불, 유럽의 기록적 폭염 등은 같은 흐름의 다른 모습이다. 베이징의 폭우는 세계가 동시에 맞닥뜨리고 있는 기후 위기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한국 역시 6월부터 한반도 전역을 할퀸 수마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1만명 이상이 대피해야 했다. 전국 곳곳에서 산사태, 지하철역 침수, 싱크홀 다량 발생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랐다. 기상청에 따르면 100년에 한 번 발생할 만한 강수량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쏟아졌으며, 올해의 경우는 지난해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퍼부어 대피하기도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이상 ‘국지적 호우’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재난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단순한 기상이변이 아니라 기후대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한반도의 남북을 가르던 기후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한반도 전역이 새로운 기후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름철에는 짧은 시간에 집중되는 폭우가 빈발하고, 그 와중에 영동 지방은 가뭄에 시달리는 등 홍수와 가뭄이 동시에 찾아오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더는 기후변화를 먼 나라의 일이자 환경 논쟁쯤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경고다.

베이징에서 느낀 기후변화는 결국 세계가 함께 겪는 변화의 일부일 테다. 기후 위기는 어느 한 도시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연결된 지구적 문제다. 베이징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부작용이 서울, 도쿄, 파리 등에서 벌어질 일의 예고편은 아닐까 우려된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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