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가지 주제어 중심으로 풀어내
日문화의 대표로 꼽히는 ‘돈가스’
서양 포크커틀릿을 현지화시켜
책 전반에 흐르는 ‘이해’의 메시지
한·일 ‘뗄 수 없는 파트너’로 정의
UNDERSTANDING JAPAN: 우리가 잘 몰랐던 일본, 그 진실과 매력 15가지/ 강철근/ 이지출판/ 1만8000원
“일본은 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자 경제발전에 있어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 80주년 경축사에서 일본을 이같이 표현했다. 이 대통령은 23~24일 일본을 방문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다. 취임 후 정상회담을 위한 첫 방문국이 일본이라 두 나라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대한 양국의 기대감이 작지 않다. 때마침 가깝고도 먼 존재인 일본과 일본인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문화사학자이자 일본 전문가인 저자는 돈가스, 무라카미 하루키, 오타쿠, 야스쿠니 신사 등 15가지 주제어로 일본의 역사·문화·사회를 넘나들며 우리가 일본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돕는다.

책 초반에 눈길을 끄는 주제어는 ‘돈가스’다. 근대 일본문화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돈가스’다. 원래 서양의 포크커틀릿이었던 음식이 일본에서 ‘돈가스’라는 이름으로 변모했다. 일본인은 이 낯선 서양 요리를 자기 식탁에 맞게 재창조했다. 튀김옷을 얇게 하고 밥과 함께 내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요리 유신’이라 부른다. 이는 일본의 ‘변용 능력’을 상징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 문물을 무작정 모방하지 않았다. 돈가스의 사례는 일본이 어떻게 근대화의 파고 속에서 생존하고, 독창성을 유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저자는 하루키가 1987년 쓴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 와타나베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이어 잃어가는 과정을 통해 ‘상실’이라는 주제를 깊이 다룬다. 당시 일본의 청춘들은 버블 경제 호황 속에서도 공허와 고독으로 몸서리를 쳤다. 하루키의 문학은 일본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동아시아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정서를 반영하는 명작으로 불린다.

요즘 회자하는 ‘오타쿠’와 ‘히키코모리’도 등장한다. 흔히 일본 사회의 병리 현상으로 언급되는 이 두 집단을 저자는 단순한 사회문제가 아니라, 일본 근대화 과정의 부산물로 본다. 오타쿠는 단순한 만화·애니메이션 마니아가 아니다. 그것은 산업 구조와 소비문화를 재편한 거대한 힘이었다. 오늘날 망가(일본식 만화)산업은 세계 대중문화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문화콘텐츠이다. 반대로 히키코모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탈락한 개인의 극단적 고립을 보여 준다. 이는 ‘N포 세대’,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가 회자하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청년들의 처지와도 겹친다.
일본은 ‘신사(神社)’의 나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야스쿠니 신사다. 전몰자를 기리는 공간이지만, A급 전범이 합사된 탓에 한·일 갈등의 상징이 되어버린 곳이다. 저자는 신사를 둘러싼 일본 내부의 논쟁을 상세히 다룬다. 일본 보수 세력은 야스쿠니를 ‘애국의 상징’으로 강조하지만, 진보 세력은 ‘역사 왜곡의 현장’으로 본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국내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식민지 침탈과 반인류적인 수탈에 대한 반성 없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하며 군국주의와 침략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저자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본의 속성”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이다.
반면 우메무라 다카시 아사히 신문기자의 사례는 양국 관계 개선에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전 조선인 종군위안부 전후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 1991년 8월11일 아사히신문 사회면 헤드라인이다. 그는 한국에 취재차 갔다가 17살에 일본군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기사화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피해를 증언한 최초의 기사다. 이 보도 이후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의 최대 쟁점이 됐다.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우메무라 기자는 일본 우익세력의 ‘날조 기자’라는 겁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일본에도 우메무라와 같은 양심적인 선각자가 적지 않은 점은 양국 관계에 고무적이다. 책 전반에서 일본을 무턱대고 미워하거나 동경하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흐른다. 저자는 “최근 2년 사이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국제결혼이 40% 급증해 사실상 ‘사돈의 나라’가 됐다”며 “시차가 없는 같은 시간대에 있고 경제·문화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두 나라는 서로에게 거울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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