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박찬대 “李 대통령 참석해야”
트럼프는 ‘안미경중’ 행태에 경고장
‘배짱’ 앞세운 외교는 무책임의 극치
1945년 일본의 패배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오늘날 연합국들이 기리는 대일 전승 기념일은 통상 ‘V-J 데이’(Victory over Japan Day)로 불린다. 그런데 나라마다 V-J 데이 날짜가 조금씩 다르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1945년 8월15일 일왕이 항복선언을 했음을 들어 8월15일을 V-J 데이로 여긴다. 우리에겐 광복절이다. 반면 미국의 V-J 데이는 9월2일이다. 1945년 9월2일 도쿄 앞바다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연합국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 외무상이 항복문서에 서명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의 V-J 데이는 미국보다 하루 뒤인 9월3일이다. 미주리 함상에서 열린 항복 의식 이튿날인 1945년 9월3일 중국군 지휘부가 일본군의 항복문서를 정식으로 접수했기 때문이다. 1949년 공산화 이후 수십년간 중국은 일왕이 항복을 발표한 8월15일을 V-J 데이로 기념했다. 그러다가 2010년대 들어 원래의 9월3일로 되돌아갔다. 공식 명칭은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일’이다. 통상 전승절로 줄여 부른다. 2차대전이 끝나고 80년이 흐른 만큼 오는 9월3일은 제80주년 전승절에 해당한다.

이재명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시절 이른바 ‘가치외교’라는 이름 아래 미국과의 밀착에 전념하며 중국, 러시아 등과는 소원해진 것을 바로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장 9월3일 80주년 전승절 기념행사에 이재명 대통령을 초청했다. 꼭 10년 전인 2015년 70주년 전승절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전례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 걱정과 반대의 목소리가 컸으나 박 대통령은 중국 방문을 강행했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올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들과 나란히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열병식을 지켜보며 손뼉을 쳤다. 6·25전쟁 시기 중공군 개입을 기억하는 한국인들로선 아연실색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불편한 것은 박 대통령 바로 왼쪽에 자리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존재였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반도를 강탈하고 1년6개월가량 지난 시점이다. 자유진영 국가들 모두 푸틴을 침략자로 규정하며 성토할 때 정작 한국 지도자는 푸틴 곁을 지킨 꼴이 됐다. 동맹인 미국이 강한 우려를 표하고 한·미관계가 차갑게 식은 것은 당연한 후과였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경선 후보인 정청래, 박찬대 의원이 지난 16일 TV 토론회를 가졌다. 이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가야 하는지 묻는 말에 두 의원 다 “참석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 의원은 “중국과 관계를 복원하려면 가야 한다”며 “정치는 미국, 경제는 중국, 균형 외교를 펴야 한다”고 근거를 들었다. 박 의원도 “중국과 척질 이유 없다”며 “국력 믿고 배짱 있게 외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당권 주자들의 노골적 친중 발언에 당혹감을 금할 길 없다. 정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이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각각 협력하면 된다’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을 추구하는 아시아 동맹국들에 경고장을 날린 사실을 모르는가. 박 의원이 우리 국력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나라 존망이 걸린 외교·안보 사안에서 ‘배짱’ 운운하는 무모함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불참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으나, 정작 대통령실에서 명확한 방침을 내놓은 것은 없다. 조현 신임 외교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확정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정부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건강한 한·미동맹을 위해 빠른 결단이 요구된다. 여당 당권 주자들은 이재명정부 출범 후 한·미관계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되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경제적 이익만 좇는 친중 행보는 우리 외교·안보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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