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 본인조차 올해 1군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두 모이는 ‘별들의 잔치’인 올스타전에 초대장을 받아들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그저 퓨처스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한 유망주가 5월초부터 KBO리그를 씹어먹으며 당당히 1군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됐다. KT의 ‘코리안 스탠튼’ 안현민(22) 얘기다.
안현민은 올 시즌 KBO리그 전반기 최대 히트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현민의 전반기 성적은 타율 0.356(216타수 77안타) 16홈런 53타점 42득점 5도루. 삼진 36개를 당하는 동안 볼넷도 39개를 골라내며 ‘눈야구’도 되는 선수다. 단순히 홈런만 노리는 ‘공갈포’ 유형의 타자가 아니다. 덕분에 출루율도 0.465, 장타율은 0.648에 달한다.
5월초부터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뛰다보니 아직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해 비율스탯 순위로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부상 없이 후반기에도 출전을 이어간다면 7월말, 8월초쯤에는 규정타석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반기 타율 1위는 롯데의 레이예스의 0.340. 출루율 1위는 KIA 최형우의 0.432. 장타율 1위는 삼성 디아즈의 0.595. 안현민의 전반기 성적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규정타석만 채운다면 ‘타-출-장’ 모두 1위에 오를 수 있다.

공을 쪼갤듯한 넘치는 파워로 담장 밖으로 공을 넘겨버리다 보니 올스타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홈런 더비에서도 우승이 기대됐다.
그러나 안현민은 11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진행된 홈런 더비에서 4개의 홈런에 그치며 7명의 출전 선수 중 공동 최하위에 머물렀다. 안현민이 타석에 들어서자 팬들의 환호가 커졌지만, 안현민은 제한 시간 2분 중 1분40초가 지날 때까지 홈런포 1개도 때려내지 못했다. 타구속도나 타구질은 나쁘지 않았지만, 타구가 뜨지 않고 라인드라이브 혹은 땅볼이 나왔다. 20여초를 남기고나서야 첫 홈런이 터졌고, 시간 종료 후 2아웃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홈런을 추가해 4개를 때리며 겨우 체면치레는 했다.
홈런 더비 다음날인 12일 취재진 앞에 선 안현민은 홈런 더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단번에 “너무 힘들었어요”라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길게 얘기해달라고 하자 안현민은 웃으며 “힘들었고, 또 힘들었어요. 더블헤더 뛰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평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초반에 홈런이 나왔다면 힘이 덜 들어갔을텐데, 1분30초 동안 하나도 안 나오다보니 몸에 힘이 더 들어간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안현민에게 배팅볼을 던져준 배정대 잘못이 아니냐는 질문에 “정대형은 정말 잘 던져주셨어요. 제가 어디에 씌였나봐요. 1등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일단 하나라도 치자라는 마음으로 홈런 더비에 임했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메이저리그를 보면 홈런 더비에 참가했던 선수가 후반기에 부진하는 모습이 종종 나오곤 한다. 극단적으로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해야 하는 홈런 더비의 후유증이 실제 경기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부담이 없느냐고 묻자 안현민은 “신경이 쓰이죠. 근데 신경 쓰이는 게 홈런 더비때문이 아니라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이도 후반기에 부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올텐데, 그때 홈런 더비가 원인이라는 말이 나올까봐, 그 부분이 신경 쓰이죠”라고 설명했다.
안현민은 전반기를 되돌아 보며 “기대 이상이었고, 상상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상상만 했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 역시 상상 이상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올스타전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챙겨보지도 않았다던 안현민은 “올해 들어갈 때 제 목표가 퓨처스 올스타전에 나가보자였는데, 이렇게 1군 올스타전에 오게 되어 놀라울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안현민은 LG 좌완 선발 송승기와 중고 신인으로써 신인왕 경쟁을 펼치고 있다. 순수 신인들도 인상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지만, 두 선수가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후반기에 송승기와 투타 맞대결을 하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안현민은 “저 또한 붙어보고 싶어요. 저랑 큰 인연이 있는 선수는 아니지만, 지금 너무 좋은 공을 던지고 있는 선수니까. 후반기에는 기회가 한 번 생기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단숨에 리그 최고 선수 반열에 오른 만큼 내년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고픈 욕심도 생기는 안현민이다. 그는 “태극마크에 대한 욕심은 모든 선수들이 갖고 있을 겁니다. 다만 너무 좋은 외야수들이 많고, 저는 수비적인 부분이 떨어진다는 것을 저 역시 인지하고 있어서 우선 WBC보다는 시즌 끝나고 펼쳐지는 일본과의 평가전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거기서 잘하면 WBC에도 나갈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우선 올 시즌을 잘 끝내고 일본과의 평가전에 나갈 수 있게 해보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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