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에 대한 압박 속에 심우정 검찰총장이 물러났다. 법이 보장한 심 총장의 임기는 2년이지만, 9개월 만의 퇴진이다. 심 총장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검찰총장은 정권이 바뀌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988년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한 법이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법 제정 후 대통령이 바뀐 뒤에도 임기를 1년 이상 유지한 경우는 김태정 전 총장과 임채진 전 총장뿐이다.
김 전 총장은 김영삼 대통령 때 임명돼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1년3개월간 직을 유지했다. 총장 임기를 2년간 보장하는 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IMF로 무너진 한국 경제를 복귀시키는 데 주력했고, 야당과의 협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었다. 김 전 총장이 정치적 계파성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그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김 전 총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아직 대통령이 되지 않은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에 대한 비자금 의혹 수사 압력을 받았는데 “(근거도 없는) 이 사건을 수사할 경우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 경제 회생의 어려움과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분명하다고 보이고, 대통령 선거일 전에 완결하기도 불가능하다”며 수사를 하지 않았다. 김 전 총장은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돼 명예로운 퇴진을 했다.
임 전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 때 임명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1년3개월간 직을 지켰다. BBK 등 여러 의혹을 받던 이 전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검찰의 독립성’에 힘이 실렸다. 임 전 총장의 진영 색이 약한 것도 유임의 배경일 수 있다.
그러나 임 전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수사 여부를 고민하다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임 전 총장은 당시 “이번 사태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든 내가 검찰을 계속 지휘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 밖에 검찰총장들은 정권이 바뀌면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 물러나는 방식을 택했다.
김두희 전 총장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10일만에, 김수남 전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2일 만에 자리를 내려놨다. 김각영 전 총장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후 13일 뒤 물러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오수 전 총장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 자진 사퇴했다. 소위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검찰 내부에서 김 전 총장에 대한 책임론이 일던 상황이었다.
심 총장은 정권교체 후에도 오히려 길게 직을 유지한 편이다. 심 총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지 28일 만에 사표를 냈다.
심 총장은 이날 200여자 분량의 짧은 입장문을 통해 “저는 오늘 검찰총장의 무거운 직무를 내려놓는다”면서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직을 내려놓는 것이 제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심 총장은 “형사사법제도는 국민 전체의 생명, 신체, 재산 등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라며 “시한과 결론을 정해놓고 추진될 경우 예상하지 못한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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