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평균 9500원 8년새 58% 급등
김밥도 5년간 38% 뛰어 큰 부담
저렴했던 구내식당도 24% 올라
“지출 줄이자” 도시락족 크게 늘어
정부, 직장인 점심식비 지원 추진
서울 중구 명동성당의 지하 구내식당에는 점심시간이면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곳 구내식당은 성당 직원들을 위한 곳이지만, 직원들이 식사를 마친 오후 12시15분부터는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 인근 직장인들이 모여든 것은 저렴한 식사 가격 때문이다.
취재진이 이곳을 찾은 지난달 30일 5500원인 한식을 주문하자 경상도얼갈이무국과 동그랑땡, 채소무침, 콩나물무침 등 정갈한 반찬들이 나왔다. 일품코너에서는 치킨카레라이스와 우동국물, 미니치즈핫도그가 한 그릇에 담겨 나왔다.

성당 인근 숙박 업소에서 일한다는 김지영(27)씨는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이곳을 찾고 있다. 김씨는 “가성비 최고의 맛집”이라며 “김밥 한 줄이 5000원인 시대에, 명동에서 이 가격에 이렇게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점심 한 끼를 사 먹기에도 부담이 느껴지는 ‘런치플레이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을 중심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밀프렙족’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1일 NHN페이코가 올해 상반기 ‘모바일 식권 서비스’로 발생한 약 900만건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국의 직장인 점심값 평균은 9500원으로 분석됐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경우 점심값 평균이 1만5000원으로 가장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8년 전과 비교해 58% 증가한 것이다.
직장인들은 한 끼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구내식당 등을 찾고 있지만, 이런 ‘성지’도 물가 상승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구내식당 식사비는 24% 올랐다. 외식 부문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같은 기간 25% 상승해 전체 소비자물가지수(16%)를 훨씬 웃돌았다.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김밥과 햄버거는 각각 38%, 37%나 뛰었다.

구내식당조차 값이 비싸지고 이용자가 몰리면서 밀프렙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밀프렙은 식사(meal)와 준비(preparation)의 합성어로, 쉽게 말해 도시락을 챙겨가는 것을 말한다.
직장인 최상우(35)씨는 한 달 전부터 아내가 싸준 도시락 김밥을 들고 출근한다. 최씨는 “집에서 김밥 도시락을 싸 오면 한 달에 8만원 정도 나가는데, 일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최소 20만원이 나간다”며 “구내식당도 1000∼2000원씩 올라 한 달에 13만원 정도 드는데, 도시락이 5만원은 더 싸다”고 했다. 신한은행의 ‘2024 신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서 남녀 공통으로 꼽은 점심값 절약법은 도시락 준비가 유일했다.
밀프렙족 증가는 각종 지표로도 나타난다. 인스타그램에서 ‘#직장인도시락’으로 올라온 게시물 수도 49만건을 넘어섰다. 밀폐용기 브랜드 락앤락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락 관련 제품군 판매량은 전년 대비 66% 증가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반영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직장인 든든한 점심’ 사업 계획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이 사업은 근로자들의 점심 식비를 3000∼6000원 덜어주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근로자 1인당 점심값 1000∼2000원을 지원하면, 지자체·기업 등도 1000∼2000원씩 지원하는 형태다. 이럴 경우 1만원어치 돼지고기 불고기 백반 메뉴를 4000∼7000원에 판매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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