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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유럽에서 왕이 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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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30 22:47:44 수정 : 2025-06-30 22: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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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나토서 회원국 방위비 인상 이끌어내
유럽은 자강안보 포기 대가 톡톡히 치러

지난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이 연출한 왕 대접에 신이 났다. 32개 회원국 정상 가운데 헤이그의 왕궁 하우스텐보스에서 숙박한 국가 원수는 트럼프뿐이다. 정상회의가 열린 25일 오전에는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조찬을 함께하면서 로열패밀리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미국 전국에서 반트럼프 시위대가 왕으로 착각하지 말라며 “노킹”(No Kings)을 외칠 때 유럽에서는 왕 대접을 해주니 더욱 소중했을 터다.

유럽인들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의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는 데 노력했다. 장시간 복잡한 주제를 다루는 회의를 싫어하는 트럼프를 위해 이틀에 걸쳐 진행하던 기존의 회의 방식을 짧게 한 번만 하도록 간소화했다. 직전 열렸던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외교 의전을 완전히 무시하고 도중에 도망쳤던 트럼프가 아닌가.

내용 면에서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냉전이 끝난 뒤 대부분 유럽 국가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 자국은 국방비를 줄였고 그 결과 유럽 안보의 절대적 미국 종속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미국은 이에 반발하여 2014년 나토 회원국이 최소한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2025년 현재 나토의 32개 회원국 가운데 24개국이 2%의 기준을 충족하는데, 이번 정상회의에서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 5%까지 올린다는 결정을 내렸다.

10년 안에 방위비를 두 배 이상 증액한다는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낸 셈이고,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트럼프에게 “그 이전 어떤 미국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얻어냈다”고 아부했다. 나토 헤이그 정상회의는 뤼터 사무총장뿐 아니라 거의 모든 회원국 정상이 트럼프에게 굴복하며 아첨하는 왕정을 연상케 했다. 베르사유궁에서 신하들이 태양왕 루이 14세를 둘러싸고 무릎 꿇었듯, 유럽의 대통령과 총리들은 이란을 폭격하고 휴전을 강제한 군사 대국의 총사령관 트럼프에게 경외심을 표현했다.

심각하게 자존심을 구긴 유럽인들은 한동안 자괴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충격은 유럽인들이 자초한 일이다. 소련이 무너졌다고 방심하면서 러시아의 위협을 무시하고 스스로 안보를 지킬 능력을 포기한 대가다. 트럼프가 유별나게 유치한 방법으로 유럽을 대하면서 망신을 줬을 뿐, 방위에 대한 지출과 투자는 독립을 유지하려는 국가의 필수 조건이다.

이번 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유럽이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고 상호 협력을 강화한다면 유럽은 21세기 독립적인 군사 강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트럼프는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5%로 올렸다는 성과와 단기적 언론 보도에 만족할 뿐, 장기적으로는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군사적으로 자율성을 확보해 독립할 것이라는 데는 관심이 없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동맹의 날개를 잃고 취약해질 수 있다.

1950년대 유럽의 군사 통합을 추진했던 방위공동체 계획은 내부 분열로 실패했으나 2020년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과 군사 통합이 트럼프 덕분에 다시 살아난 셈이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 장 모네가 이루지 못한 꿈을 미국의 트럼프가 70여 년 만에 다시 만들어 주고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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