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희(27)는 2023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다승왕(4승)을 차지한 뒤 퀄리파잉(Q) 시리즈 최종전을 거쳐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했다. 하지만 미국 무대의 벽은 높았다. 24개 대회에서 톱10은 4번에 그쳤고 우승 없이 준우승 한차례가 가장 좋은 성적이다. KLPGA 투어에서 통산 5승을 쌓고 지난해 미국 무대에 뛰어든 이소미(26)의 성적은 더 초라하다. Q시리즈 최종전 2위에 올라 신인상 후보로 주목 받았지만 27개 대회에서 11차례 컷탈락했고 톱10은 단 한번 뿐이다. 이에 안강건설과 대방건설의 후원을 받은 임진희와 이소미는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메인 스폰서 없이 이번 시즌을 시작했다. 임진희는 다행히 지난 4월 신한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했지만 이소미는 아직 후원사가 없어 ‘민모자’를 쓰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동병상련’의 어려움을 겪던 두 선수가 의기투합해 꿈에 그리던 데뷔 첫승을 일궜다. 임진희와 이소미는 30일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의 미들랜드 컨트리클럽(파70·6287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2인1조 경기 다우 챔피언십(총상금 330만달러)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합작하는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며 8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20언더파 260타를 적어낸 임진희-이소미 조는 렉시 톰프슨(30·미국)-메건 캉28·(이상 미국) 조와 동타를 이룬 뒤 18번 홀(파3)에 펼쳐진 연장전에서 버디를 낚아 대회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80만5381달러(약 10억9000만원)로 두 선수가 나눠 갖는다. LPGA 투어의 유일한 2인 1조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한국 선수가 LPGA 투어에서 우승한 것은 김아림(2월), 김효주(3월), 유해란(5월)에 이어 임진희, 이소미가 네 번째다.
임진희는 제주도 출신이고, 이소미는 전남 완도가 고향이라 두 선수는 팀 이름을 섬에서 태어났다는 뜻을 담아 ‘BTI(Born To be Island)’라고 정했다. 16번 홀까지 톰프슨-캉 조에 1타 뒤지던 임진희-이소미 조는 17번 홀(파4)에서 이소미가 결정적인 버디 퍼트를 떨궈 공동선두가 됐다. 4라운드는 두 선수가 각자의 공으로 경기해 더 좋은 스코어를 팀 성적으로 삼는 포볼 방식으로 진행됐고 연장전은 두 명이 공 하나로 번갈아 경기하는 포섬 방식이 적용됐다. 144야드 18번 홀에서 열린 1차 연장에서 먼저 퍼트한 임진희가 약 2.5m 거리에서 침착하게 공을 홀 안에 떨궈 버디를 낚았다. 더 가까운 거리이던 캉의 버디 퍼트가 홀 왼쪽으로 지나가며 우승이 확정되자 임진희와 이소미는 서로 포옹하며 데뷔 첫승의 감격을 누렸다.
이소미는 “우리 모두 작년에 힘든 루키 시즌을 보냈는데 이번 우승이 너무 행복하고, 믿기지 않는다”고 벅찬 우승 소감을 밝혔다. 임진희는 “혼자였다면 우승하기 어려웠는데 소미 덕분에 가능했다”며 “내년에 다시 이 대회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2019년 6월 숍라이트 클래식 이후 6년 만에 투어 12승째에 도전한 장타자 톰프슨은 통산 연장전 전적 6전 전패 불운에 아쉬움을 삼켰다. 미국 교포선수 오스턴 김(25)과 한 조를 이룬 김세영(32·메디힐)은 공동 6위(16언더파 264타)에 올랐고 전지원(28·KB금융그룹)-이미향(32·볼빅) 조는 공동 10위 (15언더파 265타)를 기록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4위에 올랐던 박성현(32·모히건 인스파이어)-윤이나(22·하이트진로) 조는 공동 18위(13언더파 267타)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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