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실트론 지분 매입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6일 최 회장과 SK㈜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 등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구 공정거래법에서 ‘사업 기회 제공 행위’를 금지한 취지는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한 경제력 집중 심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계열회사가 반드시 사업 기회를 우선적으로 보유한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계열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하며 다수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소수 지분 취득 기회를 포기하고 그 소수 지분을 특수관계인 등이 취득했다는 사실만으로 계열회사의 특수관계인에 대한 사업 기회 제공행위가 곧바로 추단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며 “이는 특수관계인 등이 그 취득에 있어 사실상 유리한 지위에 있게 되는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계열회사의 특수관계인에 대한 사업 기회 제공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려면 해당 계열회사가 소수 지분 취득 기회를 규범적으로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 기회의 포기가 적극적·직접적 제공과 동등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를 개별적·구체적으로 심사해 봐야 한다”며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SK㈜가 최 회장에게 사업 기회 제공행위를 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공정위가 ‘지배주주의 사업 기회 이용’에 제재를 가한 첫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SK㈜는 2017년 1월 반도체 웨이퍼 생산업체 LG실트론(현 SK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했다. 같은 해 4월 SK㈜는 남은 지분 49% 가운데 19.6%만 추가 매입했고, 나머지 29.4%는 최 회장이 사들였다.
공정위는 최 회장이 SK㈜의 사업 기회를 가로챘다며 2021년 최 회장과 SK에 각각 과징금 8억원씩 총 16억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SK실트론 일부 지분을 인수한 것을 문제 삼았다. SK실트론의 인수·합병이 마무리되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SK㈜가 지분 100%를 인수하지 않은 것은 최 회장의 사익 편취를 위한 결정이라고 본 것이다. 최 회장이 실트론 잔여 지분 인수 의사를 보이자 SK가 합리적 검토 없이 이를 양보했고 결국 최 회장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최 회장과 SK㈜는 처분에 불복해 2022년 4월 소송을 제기했다. SK㈜가 나머지 지분을 인수하지 않은 것은 이미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지분 100%를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의 지분 매입도 정당하게 입찰에 참여한 결과이며 혜택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공정위의 처분이 1심 판단과 같은 효력을 갖기에, 소송은 서울고법에서 다뤄졌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1 최 회장과 SK㈜의 주장을 받아들여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처분을 모두 취소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미 자회사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요건(지분율 70%)을 충족하는 지분을 확보한 상황에서 주식 100% 취득이 반드시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실트론의 지분 100%를 확보할 경우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고, 투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집중적인 재원을 투자하는 데 부담이 있었다”고 봤다.
최 회장이 지분 취득에 대해서도 “모두에게 공개된 공개경쟁입찰에 따른 불확실성이 있었는데, 중국 투자자와 경쟁 끝에 최 회장이 적격투자자로 선정됐다”며 “SK가 최 회장에게 지분을 취득하게 했다거나 적격투자자 선정 과정에 관여했다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원심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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