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유도의 간판김하윤(세계랭킹 5위·안산시청)이 한국 여자 선수로는 34년 만에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여자 최중량급에서 패권을 차지했다.

김하윤은 20일(한국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25 국제유도연맹(IJF)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78㎏ 이상급 결승에서 일본의 아라이 마오(세계 7위)를 반칙승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김하윤은 2년 연속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여자 선수가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 있는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최중량급정상에 오른 건 199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회 문지윤(72㎏ 이상급) 이후 처음이다. 김하윤은 준준결승에서 대표팀 후배 이현지(세계 4위·남녕고)를 반칙승으로 꺾었고 준결승에선 세계 1위인 프랑스의 로만 디코를 연장 접전 끝에 반칙승으로 누르며 결승 티켓을 거머쥐었다.
결승 상대는 시니어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일본의 신예 아라이. 베테랑 김하윤은 아라이를 노련하게 요리했다. 김하윤은 경기 초반 잡기 싸움을 펼치면서 신중하게 풀어갔고, 아라이는 쉽게 공격을 시도하지 못했다. 두 선수는 경기 시작 후 1분 38초에 소극적인 플레이로 지도 1개씩을 주고받았다. 이후 김하윤은 태세를 전환해 적극적으로 다리 걸기를 시도했다. 당황한 아라이는 경기 시작 2분 24초에 방어 자세 반칙으로 두 번째 지도를 받았다.


두 선수는 4분의 정규 시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곧바로 시간제한 없이 겨루는 연장전(골든 스코어)에 임했다. 승부는 싱거웠다. 김하윤은 연장전 41초에 아라이와 함께 그립 피하기 반칙을 나란히 받으면서 승리를 확정했다. 유도에선 지도 3개가 나오면 상대방이 반칙승을 거둔다.
김하윤은 유독 큰 대회마다 강한 면모를 보이는 강심장의 선수다. 2023년 9월에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한국 유도의 '노골드' 수모를 막았고, 지난해엔 세계선수권대회와 파리 올림픽에서 연거푸 동메달을 따냈다. 김하윤은 파리 올림픽 동메달로 2000년 시드니 대회(김선영 동메달) 이후 24년 만에 여자 유도 최중량급 메달을 한국에 안기더니 올해엔 34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여자 최중량급 우승의 결실을 봤다.
사실 김하윤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우승 후보로 꼽히지 못했다. 올림픽 이후 왼쪽 무릎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IJF 도쿄 그랜드 슬램과 올해 2월 파리 그랜드 슬램에선 연거푸 5위에 그쳤다. 그 사이 ‘여고생’ 이현지가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세대교체 주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김하윤은 이현지에게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여준 데 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고 건재를 과시했다.


기대를 모았던 이현지는 패자전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해 네덜란드의 마릿 캄프스(세계 9위)를 허리 대돌리기 한판으로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지난해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이현지는 올해 처음으로 출전한 시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는 값진 성과를 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최중량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김민종(세계 3위·양평군청)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남자 100㎏ 이상급 준결승에서 조지아의 구람 투시슈빌리(세계 4위)에게 모로떨어뜨리기 한판을 내줘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동메달 결정전으로 내려간 김민종은 타멜란 바샤예프(세계 9위·러시아 출신 개인중립선수)와 또 연장 승부를 펼쳤고, 오금대떨어뜨리기 절반으로 승리했다. 이 체급 우승은 세계 1위 이날 타소예프(러시아 출신 개인중립선수)가 차지했다.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타소예프는 지난해 3월 타슈켄트 그랜드슬램 이후 펼쳐진 모든 국제대회에서 전승을 이어갔다. 2023 파리 올림픽 결승에서 김민종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유도 전설 테디 리네르(세계 7위·프랑스)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같은 체급 이승엽(세계 25위·양평군청)은 2회전에서 탈락했다.

이로써 한국은 이번 대회 개인전을 금메달 1개, 동메달 3개, 종합 6위로 마무리했다. 남자 81㎏급 세계 1위 이준환(포항시청)은 동메달을 획득했고, 기대를 모았던 여자 57㎏급 허미미(세계 5위·경북체육회)는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2연패 도전이 무산됐다.
대표팀은 21일에 열리는 단체전에 출전한 뒤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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