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두가 같은 목적이죠. 장애인도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
최근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문제를 비롯해 종사자의 고충과 시설 입소 대기 현상 등을 다룬 ‘시설, 그곳에 장애인 산다’ 기획 시리즈가 보도된 뒤 김현아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대표가 전한 말이다. 그간 이어진 ‘탈시설 논쟁’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 등 찬성 측과 부모회 등 반대 측은 관점과 개선 방식만 다를 뿐,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게 모두의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장애계 내에서 대립이 일어난 건 일방적인 정책 추진 탓이다. 문재인정부 당시 지역사회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도 전에 ‘시설 축소’를 골자로 탈시설이 이뤄져 반발이 일어났고,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갈등은 명확한 해법 없이 공회전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시설에 있는 장애인과 가족, 생활지도원 등은 환경 개선 없이 고통만 받아 왔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조사 결과, 최근 5년간 학대가 발생한 시설 수는 238곳에 달했다. 생활지도원은 열악한 인력 구조와 처우 속에 6∼10명의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시설 축소 흐름 탓에 집에서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부모들은 시설 입소 대기만 걸어 놓은 채 ‘돌봄의 늪’에 빠졌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탈시설에 대해 “방향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되, 일률적으로 조기에 강제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언급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권리는 추구해야 하지만,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며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재명정부는 우선 탈시설 문제를 비롯해 거주시설의 열악한 환경에 관해 당사자, 가족,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면밀히 듣고 전문가들과 함께 열린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건 자립 지원을 하면서도 거주시설 개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생활과 의료 측면에서 도움이 필요해 자립지원주택 같은 독립된 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이 많다. 취재하며 만난 거주시설 관계자들도 “자립할 수 있는 장애인은 이미 대부분 떠났다”고 강조했다. 개별화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충분한 의료기기가 준비되는 등 지자체의 환경 개선 사업 지원을 받아 거주인과 가족들의 만족도가 높았던 거주시설들을 정부 당국자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삶은 다양하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삶은 소중하다. 중증 장애인의 삶과 행복의 모습도 ‘시설’과 ‘탈시설’로 획일화할 수 없는 만큼 여러 선택지를 열어 놓아야 한다. 그 선택지들이 더 나은 여건이 되도록 하는 데 정부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한 장애계 인사가 “노인 요양시설을 ‘수용소’라는 차별의 공간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근사할수록 부러움을 산다”며 “장애인 거주시설도 마찬가지”라고 한 말도 곱씹을 부분이다.
새 정부는 정책 추진에 앞서 장애인의 ‘자립’과 ‘행복’, ‘지역사회’의 의미에 대한 논의도 펼쳐야 한다. 먹고 씻는 것도 버거운 중증 장애인에게 이를 가능케 하는 것 자체가 자립을 이뤄가는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엄연히 지역에 존재하는 거주시설을 “지역사회가 아니다”라고 배제하는 시선에 대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숱한 논쟁을 떠나 결국 중요한 건 장애인과 가족들의 ‘행복’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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