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어 이란을 폭격하면서 양국 간 전면전 가능성이 커졌다.
이스라엘은 13일(현지시간) 새벽 이란에 있는 표적 100여곳을 타격했다. 이스라엘군은 전투기 200여대를 동원해 이란 중부 나탄즈 핵시설과 군 고위직 은신처·주거지, 탄도미사일 생산기지 등에 폭탄 330발 이상을 퍼부었다.

이란 내 핵 시설을 공습하면서 핵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과학자들도 최소 6명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란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레드라인(위반 시 반드시 대가를 묻겠다는 기준)으로 삼은 만큼 이스라엘이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이스라엘이 이번 공격을 미국에 사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이 사실상 이스라엘의 공격을 ‘묵인’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간 미국 정부는 전면전을 우려해 네타냐후 정권의 이란 내 핵시설 공격안을 줄곧 만류해왔다.
◆약해진 이란, 미국은 모른 척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에는 내외부 문제가 중첩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공격 명분으로 내세운 건 이란의 핵무기 획득 의혹이었다. 이스라엘군은 공습 직후 성명에서 “지난 몇 달간 이란 정권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고 있는 증거가 확보됐다”며 이란이 핵무기 개발의 모든 단계에 걸쳐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비밀 계획을 추진해왔다고 주장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파기 이후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가속해 농축도 60%를 달성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올해 4월부터 이란과 핵 협상을 시작했지만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핵무기 획득 의도로 봤고 협상은 교착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는 전날 이란이 핵사찰·검증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20년 만에 결의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핵 협상에서 이스라엘의 침공 가능성을 공연히 거론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말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던지며 협상에서 이란을 압박해온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런 미국의 기류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 이란의 대리군 역할을 하던 ‘저항의 축’도 약화한 시기였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을 계기로 하마스와 레바논 헤즈볼라를 차례로 와해했다. 이란의 맹방 시리아도 친서방 반군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저항의 축을 차례로 무너뜨린 이스라엘이 이들의 ‘본진’인 이란을 노린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 아랍권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으로 적대가 비교적 희석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마지막 남은 적성국 이란과 힘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인한다면 중동 ‘최강국’으로도 올라설 수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전쟁을 넓혀 1948년 건국 이후 형성된 종교적 분쟁과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빚어진 이슬람권과의 안보 불안,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에서 시작된 이란과 대결 구도를 군사력 우위로 종식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공습으로 이란의 방어체계가 약해졌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은 것으로도 분석된다.

◆또다시 ‘내부용’ 전쟁하나
내부적으로는 네타냐후 총리가 외부의 적을 통해 정권 붕괴 위기 문제 등을 해결하려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네타냐후 내각은 2023년 10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기습 공격을 당한 직후 이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으로 위기에 몰렸다.
이후 강도 높은 하마스 소탕전을 벌이고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중동의 친이란 무장세력들과 다면전을 벌이는 것으로 정권을 지탱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지도부가 궤멸하다시피 하면서 전쟁의 긴장도는 낮아졌고, 다시 이스라엘 야권에서는 네타냐후 정권을 실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12일 이스라엘 야권이 발의한 연립정부 해산안이 의회(크네세트)에서 간신히 부결된 건 네타냐후 내각에도 타격이 컸다. 집권 리쿠르당은 연정 파트너인 보수 종교주의 진영과 극적으로 타협안을 도출해 해산안을 막았지만 6개월 후 또다시 해산안이 발의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이스라엘과 미국 등 안팎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이란에 대한 선제폭격이 가능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란 “강도 높은 보복할 것”
공격을 당한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해 강력한 보복을 선언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성명에서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은 더럽고 피비린내 나는 손을 뻗어 사랑하는 우리 조국의 주거지역을 공격했다”며 “가혹한 응징을 당해야 한다”고 반격을 예고했다. 양국이 전면전을 치른다면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전쟁을 포함해 전쟁 3개가 동시에 벌어지게 된다.
다만 이란이 이스라엘에 보복할 여력이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다. 이란의 군사력은 오랜 서방의 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난, 2023년 10월 시작된 가자전쟁 등으로 현격히 약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란은 지난해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강행했다가 번번이 보복당했다. 두 번째 보복에서 이란은 탄도미사일 시설, 방공망 등 핵심 군사 인프라에 심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이 대규모 미사일, 드론(무인기) 공습으로 이스라엘에 보복 공격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 이란은 피격 직후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 100여대를 발사했으나 실효를 거두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이날 국가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학교와 직장 문을 닫는 등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한 대비에 들어갔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필수 시설들을 제외한 학교와 직장은 문을 닫았다.
사회적 모임도 금지됐다. 주요 병원들은 이란의 공습에 대비해 입원 환자들을 지하로 옮기고 외래 환자 진료를 중단했다. 주민들도 일제히 대피 시설로 몸을 숨겼고 이란이 강도 높은 전면 공격에 나설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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