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4일. 콤 베리어드 감독의 ‘말없는 소녀 The Quiet Girl’이 재개봉한다. 국내 개봉한 지 겨우 2년이 지났는데 재개봉을 하게 된 데는 아마도 원작자 ‘클레이 키건’의 역할이 가장 클 것이다. 영화의 원작인 키건의 ‘맡겨진 소녀 Foster’는 영화 개봉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국내 출간되어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그의 나머지 소설들도 연달아 출판되었고 작년에는 그의 또 다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팀 밀란즈)이 개봉했다.
그의 소설의 특징은 문체가 지극히 간결하다는 것이다. 장식이나 군더더기가 없고 낭비되는 문장도 없다. 묘사는 매우 시각적이어서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본다는 느낌을 준다. 그의 소설에서 사건은 직접 묘사되지도 않는다. 드러나는 것보다 오히려 가려진 부분이 더 많다. 그래서 평온한 표면 아래 뭔가 비밀스럽고 불안함이 깔려 있다고 느끼게 된다.

영화는 원작의 이 강렬한 효과를 어떻게 재현했을지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원작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예술로서 자신의 몫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소설의 영화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카메라가 1.37:1의 화면비를 택했다는 점에 있다. 1.37:1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으로 과거 흑백 시대를 재현할 때 종종 쓰이는 화면비이다. 와이드 스크린의 스펙터클에 익숙한 요즘 관객에게는 분명히 비좁고 답답한 화면이다. 이 화면은 액션보다는 심리적 깊이를 전달하는 데 유리하다. 이 영화가 가족의 비밀과 상처, 공감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감독은 영화의 주제에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한 것이다.
먼 친척 조카인 소녀 코오트를 맡은 에이블린은 초반에 “이 집엔 비밀이 없다. 비밀이 있다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반면 그녀의 남편 숀은 코오트에게 “많은 이들이 침묵할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비밀과 침묵. ‘비밀은 없어야 한다’와 ‘침묵이 필요한 때가 있다’는 상이한 주장 사이에는 이 부부가 겪은 과거의 상처와 슬픔이 놓여 있다. 1.37:1의 화면은 영화에서 말해지는 것과 말해지지 않는 것.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 사이의 거리, 간극을 담아내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확실히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과 청각의 매체이다. 소설이 캐릭터와 사건의 진실에 대한 폭로를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금지된 상상의 영역으로까지 해석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놓은 것에 비해,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캐릭터의 모호함과 사건의 불안감을 좀 더 일찍 닫고 서사의 친절함을 추구한다. 소설은 무능하고 술에 찌들어 폭력을 사용하는 전형적인 아일랜드 아버지와 다른 캐릭터를 마지막 순간에야 드러내지만, 영화는 조명과 배우의 얼굴, 표정, 이미지를 통해 한결 빠르고 명료하게 인물들의 특성을 드러낸다. 영화는 이 복잡하고 섬세한 심리적 성장의 드라마를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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