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드론대전’ 불리는 우크라전
대당 270만원 드론으로 ‘거미줄 작전’
러 공군기지 피해규모만 9조원 달해
WSJ “군사 강대국 아킬레스건 노출”
테러조직, 기존 군사시스템 함락 우려
美 ‘골든 돔’도 속수무책 주장 제기돼
美, 전투사단마다 드론 1000여대 보급
英 전력 80% 무인화 등 무기체계 개편
“우리를 노리는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으니 더 두렵습니다.”
어스름이 낮게 깔린 새벽에도 포격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총을 든 군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윙윙거리는 드론의 굉음이 상공을 뒤흔들 뿐이다. 축축한 흙냄새가 가득한 참호에서 군인들은 모니터를 응시한 채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적의 지휘부, 보급 차량, 전차 등의 위치를 포착한다. 글루건과 케이블타이로 800g가량의 작은 폭약을 장착한 드론은 적진으로 돌진해 이내 폭발하고, 모니터는 ‘지지직’ 노이즈를 내며 임무완수를 알린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디 벨트가 전한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의 모습이다. 참호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러시아군 드론의 폭발음이 들리자 우크라이나 드론 부대 소속 알렉스는 “이것은 21세기의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며, 이 전쟁에서는 누구든 드론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전했던 미국 재향군인 칼 라슨도 최근 라트비아에서 열린 ‘드론 서밋 2025’에서 “적어도 낮에는 벙커와 방어막을 벗어날 수 없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드론이 적인지, 아군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전쟁의 기존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증언이다.
‘제1차 세계드론대전’,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르는 별칭이다. 드론이 전쟁의 핵심 전력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갖춘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저렴한 드론을 앞세워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각국은 미래 전장의 판도를 바꿀 비대칭 전력 증강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500달러 드론이 바꾼 전장의 법칙
대당 300~500달러(약 41만~68만원)인 1인칭 시점(FPV) 소형 드론이 순식간에 건물을 파괴하는 첨단 무기가 된다. 우크라이나군은 수천대에 불과하던 전쟁 초기 FPV 드론 보유량을 지난해 150만대까지 늘렸다. 올해에는 총 26억달러(3조7900억원)를 들여 FPV 드론 450만대를 구매하고, 이와 별도로 장거리 드론 최소 3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바닥난 포탄을 대신하던 드론이 전쟁의 ‘게임체인저’가 된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각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1일 대당 2000달러(270만원) 드론으로 러시아 본토 4곳의 공군기지를 동시 타격해 총 70억달러(9조6000억원)어치에 달하는 최첨단 전략 폭격기를 파괴한 ‘거미줄 작전’을 통해 저비용·고기술의 비대칭 전력이 어떻게 최첨단 핵심 자산을 무력화할 수 있는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값싼 드론이 강대국의 심장부를 타격한 장면은 단순한 전술적 승리를 넘어 전 세계에 전쟁의 법칙이 바뀔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대전의 무게중심이 무기에서 기술로, 대규모 포병 사격 같은 재래식 전술에서 정밀 타격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다. 미 공군 참모총장 데이비드 올빈은 “이번 공격은 빠르게 진화하는 드론 기술과 비대칭 전쟁 시대에는 겉보기에 뚫을 수 없는 곳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러한 전술은 공격자와 방어자 모두에게 딜레마를 야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이 군사 강대국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년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부와 첨단기술의 불균형 덕분에 승리해왔다”며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혁신으로 중무장한 세계 강대국에도 점점 더 강력한 일격을 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세계 최강의 군사장비를 대거 보유한 미국은 드론 공격과 같은 비전통적, 저비용 장비를 활용한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23년 12월 정체불명의 드론이 F-22 전투기가 주기된 버지니아 랭리의 공군기지 상공을 날아다녔다는 증언도 최근 나왔다. 글렌 반헤크 전 미공군 대장은 “누군가가 정말 적대적인 행동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 당시 전투기들이 얼마나 취약했겠나”라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항공기뿐 아니라 전력망, 교통시설, 항만 등 핵심 기간 시설도 드론 등을 활용한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 제이슨 머시니 랜드연구소 대표는 워싱턴포스트(WP)에 “전략 폭격기, 전략 미사일과 지하격납고(사일로), 전략 핵잠수함 등을 보유한 국가는 이번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보면서 ‘우리의 무기 보관 체계가 드론 공격에 취약해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야심차게 발표한 1750억달러(약 240조원) 규모의 ‘골든 돔’ 같은 값비싼 첨단 미사일방어망도 소형 드론의 저비용·고효율 전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탄도·극초음속·순항 미사일 등을 격추하는 데 최적화된 골든 돔이 저고도·비정형 궤도로 비행하는 소형 FPV 드론에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골든 돔 1단계에 배정된 250억달러(34조원)로 이론적으로 4300만대 이상의 드론을 생산할 수 있다.
대만해협에서도 거미줄 작전이 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글로벌 군사 정보 회사인 제인스의 정보 책임자 코스타스 티그코스는 러시아처럼 중국도 전략적 후방 지역에 광활한 영토와 수많은 군사 기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거미줄 작전으로 후방 지역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국방 약소국 외에도 반군이나 테러 조직이 드론을 활용해 기존 군사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저렴한 드론으로 홍해 수로를 장악했고, 미얀마에서는 반군이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에서 구매한 600달러(82만원) 농업용 드론을 개조해 무기로 활용한 바 있다고 WSJ는 전했다. 티그코스는 또 “각국이 모든 민감한 지역에 드론 방어 시스템을 배치하고 국경 보안을 통해 입국 지점을 훨씬 더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군사 체계 현대화 나선 강대국
거미줄 작전 닷새 만인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효용이 입증된 드론산업을 육성하고 미국 영공을 드론 공격에서 보호할 방법을 마련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영공을 통제하고, 대중과 주요 기반시설, 대규모 인파 행사, 군사·민감한 정부 시설과 작전을 부주의하거나 불법적인 무인항공체계 사용이 가하는 위협에서 보호하는 게 미국의 정책”이라고 소개했다. 주요 시설 상공에서 드론 비행을 제한하는 규제를 마련하고, 비행 금지 구역에서 드론을 날리면 처벌을 강화하라는 지시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5년간 360억달러(49조원)를 들여 전투사단마다 드론 1000여대를 보급하는 무기체계 개편에 착수한 바 있다. 이는 미국 육군이 냉전 이후 단행하는 가장 큰 규모의 개편이라고 WSJ는 전했다.

영국도 9조원을 들여 전군에 대규모 드론 시스템 확충과 전장 내 전력 80%를 드론으로 무인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지난 2일 발표한 ‘전략 국방 검토’에서 “향후 5년에 걸쳐 드론 시스템을 대규모로 확충한다”며 “50억파운드(9조2000억원)를 투자해 드론 등 무기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육·해·공 3군 전체에서 드론 활용을 가속하고자 새로운 드론 센터를 설립할 것”이라며 “드론을 최전선에 더 빨리 배치할 방침”이라고 했다. 소형 드론의 정밀 타격이 대규모 포병 사격 같은 재래식 전술보다 효율적이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프랑스 국방부도 자국 대표 자동차업체인 르노에 군사용 드론 생산을 제안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은 지난 6일 언론 인터뷰에서 “프랑스 자동차를 생산하는 대기업이 중소 방산업체와 손잡고 우크라이나에 생산 라인을 구축해 드론을 생산하는 전례 없는 파트너십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군수 물자를 더 빠르게, 대량으로, 저렴하게 생산하는 것은 프랑스 방위사업청의 목표이기도 하다. 에마뉘엘 시바 방위사업청장은 지난 1월 “대량생산이 가능한 장비 확보를 위해 전통적 방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올해부터 민간업체와 협력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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