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역 중개사들 모인 ‘사조직’
500만~3000만원 가입비 받고 운영
오프라인 부동산 90% 가입 추정
매물 등 공유하고 휴무일 조율도
가입 거절한 중개사는 ‘왕따’ 당해
단속 대상 안 돼 사법처리 어려워
협회선 “법정단체 돼야 해결 모색”
“오늘 계약 예정이던 오피스텔 계약건을 상대 부동산에서 갑자기 취소했다고 하네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탄 내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모씨가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피스텔 매도 중개를 맡아 매입자를 찾은 뒤 우여곡절 끝에 이날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됐는데 결국 일이 틀어진 것이다. 이유를 알고 싶어 매입 담당 부동산에 연락했더니 김씨에게 돌아온 답은 “‘지역회 비회원’이라 그런 것 같다”는 말이었다. 김씨는 “지역회 가입을 거절한 뒤 이러한 일이 여러 차례 벌어지고 있다”며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해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역회란 특정 지역의 공인중개사들이 모여 회원제로 운영하는 사조직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회는 △부동산 매물 △법률 정보 △영업 노하우 △지역 뉴스 등을 공유하고 영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휴무일을 조율하기도 한다. 친목 도모 및 영업 편의를 위해 비공식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이라 공식적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오프라인 공인중개사무소의 90%가량은 지역회 소속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처럼 지역회 가입률이 높은 이유는 가입 거절 시 자칫 김씨처럼 업계의 ‘왕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500만∼3000만원에 달하는 가입비는 신규 진입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지난해 수원에 공인중개사무소를 개업한 김씨가 지역회 가입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도 500만원이 넘는 가입비다. 이렇게 거둬들인 가입비 및 월 회비는 회원들의 각종 경조사 및 야유회, 때때로 불우이웃을 돕는 성금으로 활용된다고 지역회 관계자는 설명했다.
김씨는 이후 수차례 공동중개(매물을 소개하거나 소개받아 수수료 수취)를 거부당한 것은 물론 회원 부동산에 의한 영업 방해까지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지역회가 일종의 ‘담합’처럼 굳어져 소비자까지 그 피해가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신규 공인중개사무소의 진입장벽을 높여 공급자가 줄어들면 경쟁이 감소해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울러 회원 간 가격 담합으로 인해 소비자의 가격 협상력도 떨어질 수 있다.

이처럼 지역회의 폐해가 명확하지만 막상 이를 단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적 이익 보호를 목적으로 비밀리에 운영되는 탓에 혐의를 입증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친목회 등 비공식적인 회원제 운용은 공인중개사법에 규정돼 있지 않으며 단속 대상도 아니라 지역회 자체를 문제 삼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그동안 공정위에 접수된 신고 건수도 미미하며 그중 사법처리로 이어진 것은 단 1건에 불과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가락동 아파트단지 인근에서 ‘가락회’라는 공인중개사 모임을 꾸려 담합행위를 한 혐의로 회장 A씨 등 4명에게 지난해 12월 유죄를 선고된 바 있다. A씨는 징역 8개월, 나머지 공범 두 명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다른 한 명은 벌금 500만원이 부과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만약 부동산 사업자들이 사조직을 통해 가격을 담합하거나 회원사와 비회원사를 구분해 의도적으로 영업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했다면 위법 소지가 있다”면서도 “자진시정할 경우 경고에 그쳐 사법처리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대한변호사협회나 건설사협회처럼 자신들을 법정단체로 만들어주면 지역회 문제 해소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현재 공인중개사협회는 법정단체가 아니라 지역회 관련 신고가 들어와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다른 전문직들처럼 협회 가입을 의무화하고 조사권과 징계권 등 강제권을 통해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가 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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