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부 대표’ 이호열 주쿠바 대사
故 아이작 본다르 상병 묘소 찾아
미군 소속으로 참전 중 23세 전사
대사관 “참전 용사 찾기 지원할 것”
6·25전쟁에 참전했던 쿠바 전사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첫 공식 참배가 진행됐다. 한국과 쿠바가 지난해 2월14일에야 정식 수교를 해 그간에는 6·25전쟁 쿠바 참전 용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추모는 이뤄지지 않았다.
9일(현지시간) 주쿠바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이호열 대사는 전날 수도 아바나 외곽 과나바코아 지역에 있는 유대인 묘역에 있는 참전 용사 아이작 본다르 상병 묘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 대사의 방문에는 재쿠바 유대인협회가 함께 했다.

이 대사는 추모사에서 “한국 정부를 대표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고인의 고귀한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은 번영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본다르 상병을 대한민국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 쿠바에 있는 6·25 참전용사 묘지를 찾아 참배한 건 이번이처음이다. 지난해 2월 14일 전에는 양국이 수교를 맺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관련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1994년 공개된 미국 합참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1950년 12월∼1951년 1월 쿠바의 보병 1개 중대 파병 제의를 수락했다. 이후 쿠바군 약 63명이 1차 파병돼 미군과 함께 작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쿠바는 이어 군용기 파견도 제의했고, 미국으로부터 병력을 최소한 대대 규모로 늘려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이에 따라 쿠바인이 모는 수송기 최소 3대가 투입됐다. 쿠바는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전에는 미국과 매우 가까워 이 같은 제안이 가능했고, 실제 파병까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본다르 상병의 참전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이뤄졌을 것이다. 주쿠바 한국대사관과 미국 전사자 추모 온라인 사이트인 ‘아너스테이츠’ 등을 종합하면 그는 1928년 8월 15일 쿠바에서 태어난 뒤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던 중 미군 45보병사단 소속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전장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뒤 23살 때인 1952년 5월 29일 치료받다 전사했다. 유해는 1952년 9월쯤 쿠바로 옮겨졌다고 한다. 본다르 상병처럼 미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함께한 쿠바 출신자들이 더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다만, 쿠바가 국가 차원에서 파병한 것은 아니어서 한국 국가보훈부에서 정리한 참전국 명단에는 없고, 물자지원국 중 하나로는 올라와 있다.
주쿠바 한국대사관은 재쿠바 유대인협회와 지속해 교류하며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쿠바에 영면해 있는 참전 용사 찾기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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