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영화배우·기자로 활동 ‘팔방미인’
당대 폭력·억압·비운의 죽음 등 생애 기구
‘문단의 샛별’ 같은 존재… 흔적 곳곳에 남아
古語·일본식 표현 원전 현대어로 옮겨
“김명순 작품 짧은 문장만으로 사람 홀려
주변적 이유로 문학사서 소거 가슴 아파”
이달 창작집 ‘생명의 과실’ 복원본 등 출간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찬사를 받으며 데뷔한, 등단 제도로 문단에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작가. 남성 작가 창작집 출간도 드물던 1925년 여성 최초로 창작집을 낸 작가. 일본어·영어·독일어에 능통했던 에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의 번역가. 영화배우와 기자로도 활동한 팔방미인. 동시대 남성 문인들의 악의적이고 지속적인 집단 공격에 시달린 ‘기생의 딸’이자 성폭력 생존자.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로 활동을 시작해 시·소설·희곡·에세이·시론 등 수많은 글을 쓴 작가 김명순(1896∼1951·사진)을 설명하는 말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독자에게 생소하다. 김명순에 대한 관심은 종종 그의 작품이 아니라 그에게 가해진 당대의 폭력과 억압, 일본에서 맞이한 비운의 죽음 등 기구한 생애사에 쏠리기도 한다.

김명순 문학의 발자취를 추적·발굴해 현대 독자들에게 읽힐 만한 방식으로 소생시킨 사람들이 있다. 시인 박소란과 출판사 핀드 대표 김선영이다. 작가와 출판편집자로 오래전 만난 둘은 지금은 긴말 필요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독려하는 동료이자 동갑 지기다.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카페핀드에서 박 시인과 김 대표를 만났다.
창비에 몸담으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을 책임편집한 김선영은 독립해 창업한 1인 출판사 핀드의 첫 책으로 2년 전 김명순 산문집 ‘사랑은 무한대이외다’(2023)를 냈다. 최근에는 소설집 ‘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를 출간했는데, 김명순이 1917∼1937년 발표한 소설 13편과 희곡 1편이 실렸다.
◆발로 뛰어 찾고 끝없이 읽고… 100년 전 작품 현대화
기획의 연원은 2022년 박 시인의 제안으로 시작된 ‘김명순 읽기’ 모임. 김 대표는 “한국문학팀에서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한 나조차 박 시인에게 김명순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자가 너무 많아 읽을 수 없는 100년 전 텍스트에 박 시인이 일일이 독음을 달아주어 소리 내 읽었는데 글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때의 경험으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박 시인은 그 이전부터 김명순의 텍스트에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그는 “2018년쯤 근대 여성 작가들의 여러 작품을 읽었는데, 뛰어난 작가들 중에서도 김명순은 너무 돌출적이고 특별했다”고 술회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선 갖은 난관에 부딪혔다. 작가가 남긴 원전 찾기부터 쉽지 않았다. 국책 연구원·도서관, 대학 등의 수많은 문서고와 신문 아카이브를 뒤졌다. 어렵게 찾아낸 100년 전 글은 외국어에 가까웠다. 박 시인은 고어(古語) 투 문장과 한자, 일본식 표현으로 가득한 원전을 현대어로 옮겼다. 그는 “여러 종류 사전을 끊임없이 찾아가며 (의미를 알 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고 회상했다.
관건은 원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옮기는 일이었다. 박 시인은 “엄밀함을 따지되, 사전에 있더라도 너무 어려운 단어는 친숙한 언어로 바꿨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원전의 의미가 불확실해 박 시인이 걱정할 때가 많았지만, 김명순의 문장을 그보다 오래 들여다본 이는 없다”면서 “같은 창작자로서 두 작가의 마음이 통해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며 웃었다.
핀드는 이달 중 김명순 창작집 ‘생명의 과실’(1925)과 ‘애인의 선물’(1930) 복원본, 문장집 ‘사랑하는 이 보세요’를 추가로 내놓는다. 한국 여성 작가 복원본 출간은 처음이다. 작가의 첫 책 ‘생명의 과실’이 빛을 본 지 100주년 되는 올해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았다.
◆사색하는 예술가, 다재다능한 창작자 ‘명순 언니’
이들은 작업을 지속시킨 동력이 김명순의 작품 내부에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시인은 “김명순의 작품을 한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영업’이 필요 없다”며 “그만큼 작품이 너무 깊고 좋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문장집을 작업하며 수도 없이 읽었는데 아직도 어떤 문장에서는 눈물이 솟구친다”며 “짧은 문장만으로 사람을 홀리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글”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이 본 김명순은 꿈과 재능이 많았던 사람, 사색하는 사람이었다. “‘애인의 선물’을 엮은 이후 작가는 기자 생활을 종결하고 영화배우로 새로운 활동을 도모했죠. 외국 문학을 원어로 읽고 이를 탁월하게 소화해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알았고,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일본에 가서 프랑스어 학원을 다니려던 흔적도 있어요. 또 작품을 보면 김명순이 끊임없이 내적으로 분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사색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 사람인데, 작품 안에 그 사색의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박소란)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김명순을 ‘명순 언니’라 칭했다. 박 시인이 쓴 소설집 ‘엮은이의 말’에서도 그는 작가를 ‘언니’로 부른다. 작가가 남긴 수많은 글을 읽으면서 가까운 존재로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박 시인은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시대와 언니가 사셨던 시대에 여성이 처한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다”며 “언니라는 호칭에는 ‘우리는 하나’라는 연대의 의미도 있다”고 했다.
◆의도적 망각의 역사… “읽으면 빠져듭니다”
김명순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당대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였다. 박 시인은 “김명순이 활동한 시기 문예지에 ‘다음 호에 김명순 여사 소설이 연재되니 기대하시라’ 하는 식의 공지가 별도 게재되곤 했다”며 “요샛말로 ‘문단의 샛별’ 같은 존재였다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룩한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김명순은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작가다. 193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거처를 옮긴 후 가족 없이 사망한 그의 이름은 소리 없이 잊혔다.
김 대표는 “남성 문인이 김명순을 모욕하려 쓴 소설은 전집에 버젓이 실려 있지만, 정작 김명순의 글은 찾아 읽기 어렵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박 시인은 “작가의 작품성이 이렇게 뛰어난데, 유족이나 추종자라 할 만한 세력이 없다는 주변적 이유로 그가 (문학사에서) 소거됐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한목소리를 냈다.
“지금껏 김명순 작품에 접근하기가 어려웠을 뿐, 한 번 읽으면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는 깊이가 있습니다. 남녀를 통틀어 어떤 작가도 쉽게 가지지 못한 독보적인 개성이라고 감히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김명순을 읽고, 작품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고, 함께 공부하는 자리가 많이 생겨나기를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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