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억 들인 핵탐지 장비, 검증도 없이 ‘국산화 성공’ 판정

북한 핵실험을 탐지할 국산 장비 개발 사업이 외국 기술을 베낀 사실이 드러났지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자체 조사에서 이를 덮은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연구 부정 여부를 검증하겠다며 꾸린 조사위조차 이해당사자가 포함된 ‘짜맞추기’였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는 9일 ‘KINS 연구윤리조사위원회 구성 및 운영 실태’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공개하며, KINS가 지난해 실시한 내부 조사에서조차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해당 조사는 KINS가 국비 23억 원을 투입해 개발한 제논(Xe) 탐지 장비 ‘젬스(Xems)’의 핵심 기술이 외국 장비와 거의 동일하다는 원안위 지적 이후 이뤄진 것이다. 제논은 핵실험 시 방출되는 방사성 기체로, 이를 대기 중에서 포착하면 핵활동 여부를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KINS는 조사위 위원 7명 중 2명을 당사자와 공동 연구 경력이 있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인물로 위촉했다. 이들은 논문 발표, 해외 훈련, 외부 자문 등을 함께한 이력이 있었으며, 실제로 조사 보고서의 기술적 판단도 이들이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위는 탐지 장비가 작동 불능 상태로 방치돼 있었고, 성능을 입증할 객관적 자료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성과가 제대로 이뤄졌다’는 주장만을 근거로 연구 부정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앞서 원안위가 징계를 권고한 연구자 3명은 결국 견책 처분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KINS가 관련 지침이나 매뉴얼도 없이 조사를 진행했고, 위원 이해관계 여부도 형식적 서약서만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원안위는 조사과정에서 태만했던 행정 직원 3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지만, KINS는 ‘포상 경력’을 이유로 징계를 경감했다.
KINS와 별도로 사업을 공동 진행한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은 이미 지난해 말 연구윤리심의위원회를 통해 해당 사안을 연구 부정으로 결론 내렸다. 현재 제재 수위 결정을 위한 평가단이 구성된 상태다.
결과적으로 제논 탐지장비 국산화 사업은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기술 분쟁을 우려해 울릉도 배치가 미뤄졌고, 개량품으로 대체 설치됐으나 성능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KINS는 현재 장비를 다시 해체해 성능 시험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시험 성적서도 없이 특정 기업에 장비를 납품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났고, 일부 연구자는 금품수수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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