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김근수 교수 연구팀과 서울대 양범정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고체 물질 속 전자의 양자거리 측정에 성공했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6일 발표했다.
양자거리는 미시세계 입자 사이의 양자역학적 유사성을 수치로 나타낸 물리량이다. ‘거리’라는 표현 때문에 아주 작은 입자들 사이 간극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생활에서의 거리와는 다른 개념이다. 전자 같은 양자는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며, 특정 공간에 퍼져 있는 파동의 형태로 이해된다.

김 교수는 5일 연구 성과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에서 양자거리라는 용어에 대해 “미시세계에 가면 파동으로 퍼지기 때문에 입자들의 거리를 잰다는 게 조금 난해한, 모호한 개념이 된다”며 “인간의 경험칙상 직관에 와닿지는 않으나 정확히 거리 단위가 맞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양자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양자거리는 양자세계에서 양자역학적 유사도를 의미하며, 두 입자가 완전히 똑같은 양자 상태일 때는 최솟값 0, 완전히 다르면 최댓값 1이 된다.
김 교수는 “양자거리를 잰다는 것은 양자컴퓨터, 양자센싱 등 대부분의 양자기술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이라며 “뿐만 아니라 양자물질의 여러 양자 현상, 즉 광학적 특성, 전도적 특성, 초전도와 같은 성질도 양자거리를 바탕으로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고 있기에 양자거리가 고체물리학계에서 상당히 각광받고 있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그간 세계적으로 양자거리를 측정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으나 현재까지는 고체 속 전자의 양자거리를 간접적으로 측정한 사례만 보고됐다. 김 교수는 “올초 공동 교신저자인 양범정 교수 그룹이 미국 MIT 실험 그룹과 협력해 양자거리를 측정한 것이 유일한 성공 사례”라며 “하지만 당시 연구는 이론적인 근사에 의거해 양자거리의 네가지 핵심 요소 중 하나만 간접적으로 측정한 것에 해당하지만, 이번 연구는 이론적 근사 없이 양자거리의 네가지 핵심 요소를 완전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다르다”고 전했다.
한국 공동 연구팀은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물질인 흑린에 주목하고 연구를 고도화시켰다. 먼저 이론그룹인 양 교수팀은 흑린의 단순한 조성과 대칭 구조로 인해 전자의 양자거리가 위상차(파장이 동일한 두 파동의 최댓값 사이의 위치 간격)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실험그룹인 김 교수팀은 각분해광전자분광 실험에서 편광된 빛을 이용하면 전자 간 위상차에 따라 검출 신호의 세기가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김 교수팀은 흑린 속 전자의 위상차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이를 통해 양자거리를 정밀하게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각분해광전자분광은 물질에 빛을 쬘 때 튀어나오는 광전자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분석하는 기법이다.
김 교수는 연구방법에 대해 “방사광가속기로 아주 강한 빛을 만들고 편광 방향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도 있다”며 “이번 실험에서 빛의 진동 방향, 편광이라고 하는 것을 제어해 봤는데 (양자거리가 가까운) 전자의 위상차 상태는 수평 방향의 진동을 가지고 있는 빛으로만 관측이 가능하고, 빛의 진동 방향이 수직인 빛을 이용하면 위상차가 정반대인, 즉 양자거리가 아주 먼 전자 상태만 관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공동연구팀은 “안전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정확한 측량 기술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류없이 정확하게 동작하는 양자 컴퓨터나 양자 센싱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확한 양자거리 측정 기술이 필요하다”며 “이번 연구성과는 다양한 양자 기술 전반에 기초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기부는 “기존 한계를 극복하고, 고체 속 전자의 양자 거리를 직접적이고 완전하게 측정한 이번 연구 성과는 양 교수의 이론그룹과 김 교수의 실험그룹이 각각 5~10년 동안 꾸준히 발전시켜 온 전문성을 토대로 이론그룹과 실험그룹의 긴밀한 협력 연구 끝에 창출해 낸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날 게재됐다.
김 교수는 앞으로 양자기하 분야 연구를 선도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최근에는 고체 속 전자의 위상학적 성질 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성질도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으며, 이 분야를 양자 기하라고 한다”며 “양자거리 측정은 이제 태동 단계인 양자 기하 연구의 중요한 초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연구를 다양한 대칭 구조와 전자 특성을 갖는 고체 물질로 확장하여 양자 기하 분야의 연구를 선도하고자 한다”며 “국내 연구진이 특정 연구 분야를 국제적으로 선도하는 것이 아직 우리나라에 드문 편인데, 추격형(패스트 팔로워)이 아닌 선도형(퍼스트 무버) 연구로 그런 사례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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