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불의는 확실히 단죄해야”
공직선거법·형소법 개정안 등
‘李 방탄법’은 일단 숨 고르기
국힘 의총 때 당론 채택 ‘파열음’
‘친한계’ 요구 자율투표는 무산
안철수·김재섭 등 특검 찬성표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달 22일 경남 양산 유세에서 내건 말이다. 포용과 화합의 정치를 강조하면서도, ‘용서할 수 없는 선’은 분명히 그어야 한다는 정치철학을 드러낸 발언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2주 뒤인 5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채해병 특검법’ 등 이른바 ‘3대 특검법’을 단독 처리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막아섰던 법안들이, 이 대통령 취임 다음날 여당 주도로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이다. 대통령이 말한 ‘기준’이 실제 어디까지인지를 입법으로 보여준 셈이다.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은 3대 특검법에 반대 당론을 채택했지만,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각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게 형성된 상황에서 여론전에서도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민주당은 ‘이재명 방탄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공직선거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당장 처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불의 단죄”… 與 단호한 공세
민주당이 이 대통령 취임 후 첫 본회의에서 ‘3특검법’을 처리한 것은 해당 법안 수사를 통해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명확히 보여주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회 정의를 단단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불의를 확실하게 단죄해야 한다”면서 “지난 정권에 가로막힌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해병 특검을 차질 없이 추진해서 역사의 물줄기를 정의롭게 바꾸겠다”고 말했다. 원내대표에 출마한 후보군들도 해당 법안 처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영교 의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빠르게 수사하고 그에 합당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정부와 국회가 빠르게 해야 할 일”이라며 “이번에도 반대한다면 국민의힘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기 의원은 오전 출마회견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타협할 수 있는 것과 타협할 수 없는 것, 협상할 수 있는 것과 협상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며 “재발됐을 경우에 재앙으로 가는 문제에는 단호하게 책임감을 갖고 끊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3특검법’은 빠른 처리에 나섰지만, 공직선거법과 형사소송법 등 본회의에 계류된 다른 법안들의 처리는 미뤄졌다. 공직선거법은 허위사실공표죄의 구성 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내용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두 법안 모두 선거과정에서 법안 통과가 추진됐는데 ‘이재명 방탄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개최 전 열린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한다 안 한다를 공식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공감대가 큰 법안이 있는가 하면, 다음주에 처리가 어려워보이는 법안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해당 법안들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野 당론 반대 역부족, 내부는 분열만
국민의힘은 그동안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쓰며 막아왔던 3대 특검법과 검사징계법에 대해 반대 당론을 채택했지만 여당의 강행 처리를 막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당론 채택에 반대하는 이견만 노출됐다.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원총회가 정회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상정한 4개 법안에 대해 우리 당은 당론으로 반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내대표직 사의를 표한 권성동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여당의 법안 처리 강행을 비판했다. 권 원내대표는 “오늘 안건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새 정부 1호 법안이어야만 했는가 그런 안타까움이 든다”며 “되돌아보건대 그때는 힘이 있어서 걱정과 비판의 목소리는 묻혔고, 잘했다는 박수 소리가 귀에 더 크게 들렸다. 그런데 국민들은 하나하나 지켜보고 계셨다. 지나고 나서 아차 하고 후회해봐야 돌이킬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의원총회에서 6선 조경태 의원 등 친한(친한동훈)계 의원을 중심으로 20여명이 당론 채택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이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당론 변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날 투표에서 친한계를 비롯해 안철수·김재섭 의원 등은 3대 특검법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 다만 검사징계법에는 이들도 대부분 반대를 눌렀다. 의총에서 6선 조경태 의원은 “12·3 비상계엄이 잘못됐다는 것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자유 투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국회에선 해병대원들과 가족들이 본회의장을 찾아 특검법 통과 과정을 지켜봤다. 채해병 특검법이 처리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일어나 해병대원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고, 해병대원들은 경례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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