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새벽, 거센 파도를 뚫고 상륙정이 해변에 닿자 수많은 병력이 바닷물을 철벅거리며 쏟아져나왔다. 이윽고 기관총에서 뿜어낸 총알이 빗발치면서 1944년 6월6일 프랑스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계속되는 악천후가 잠깐 멈췄던 그날은 극비에 부쳐졌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 개시 ‘디데이’(D-Day)가 됐다. 연합군의 기만전술로 방심하던 독일군은 간밤의 짙은 해무로 인해 기습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해안 방어의 책임자인 에르빈 롬멜 사령관은 휴가를 떠났고, 히틀러가 취침 중이라 보고는 지연됐다.

상륙은 5곳의 해변에서 전개됐으며 연합군은 이날 하루에만 항공기 1만3000대, 함정 6000척을 동원해 7개 사단 병력(15만6000명)을 프랑스 북서부 해안인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결정지은 ‘지상 최대 작전’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다. 상륙 초기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많은 병사가 사망했다. 상륙 후 첫 3주 동안 연합군의 손실은 공식적으로 사망자 9000여명, 부상자는 5만여명에 이르렀다. 특히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은 훗날 ‘피의 오마하’라고 불릴 정도로 피해가 극심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점차 해변 진지를 확보하며 교두보를 구축했다. 연합군은 끝내 독일군 방어선을 뚫는 데 성공했고, 이후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을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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