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의 격렬한 패권경쟁 속에서
동북아의 ‘약한 고리’로 비칠 땐
자칫 운신의 폭만 좁아질까 우려
대선 캠페인 당시부터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강조하며, 가치외교를 강조했던 윤석열정부의 외교 기조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윤석열정부의 가치외교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 초기 가치외교 기조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데, 애초 미국 바이든 정부가 가치외교를 강조했던 이유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약화되었던 민주주의 동맹국들 간의 연대를 회복하고 동시에 전 세계적 민주주의 쇠퇴 추이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국 주도의 디지털 권위주의가 현저히 확산되었기에, 이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중 경쟁의 양상이 단순히 양국 간의 경쟁이 아닌 양국 네트워크 간의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 집권기는 소위 ‘국제질서의 재편’이 가장 빠르게, 그리고 전 세계적 수준에서 이뤄지던 시기였으며 수많은 소다자협력 플랫폼을 통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지역 아키텍처가 재편되던 시기였다. 이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 동안 강조했던 한·미·일 협력도 이러한 아키텍처 중 일부이며, 현재의 인도태평양 지역 아키텍처는 지역 안정과 번영을 목표로 한다. 나토-IP4는 무력에 기반해 현상변경을 시도한 러시아에 대한 경고이자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위한 목적이다. 이러한 네트워크 확장은 한국 외교의 자산이며 이를 통해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요컨대 한 국가의 지역 아키텍처에 대한 입장은 그 국가의 전략적 입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강대국 경쟁은 여전하며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제휴가 심화되고 있고 일본은 원 시어터(one theater), 즉 단일 전구 구상을 통해 지역 질서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한다. 중국은 서해에 불법 구조물을 넘어서 부표를 설치했고, 중국의 제조업 시장 장악으로 한국 제조업은 무너지고 있으며 기술 및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러시아 역시 인도태평양 지역에 진입하며 중국의 현상 변경에 동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내부에서는 쿼드를 대신할 미국, 일본, 필리핀, 호주 중심의 태평양 안보협약 구상도 제기되었다. 대만 해협 위기를 중심으로 서태평양 지역 내 안보 불안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며, 위와 같은 구상은 지역 안정과 번영 특히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한 서태평양 갈등 억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해당 국가들은 새로운 아키텍처 구상을 고려하며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키텍처 구축을 단순히 진영화로만 인식한다면 한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켜내고 확장시킬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마치 가치외교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외교기조를 설정한다면 한국의 운신의 폭은 매우 좁아질 것이다. 우리는 지난 문재인정부 말기 대미외교와 윤석열정부의 대미외교를 통해 우리가 국제질서 안정과 번영을 위해 더 많이 기여한다면 우리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이 확대되고 대미외교의 입지도 제고될 수 있음을 경험해 왔다. 국제 정세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모든 국가와 잘 지내겠다는 것은 결국 한국의 전략적 이익과 전략적 이익을 구현할 기존의 네트워크, 그리고 이를 통해 쌓아 온 한국의 대외적 영향력을 방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한국이 또다시 동북아의 ‘약한 고리’가 되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확산시킬 것이다.
이 대통령 취임 첫날 미국과 중국의 한국에 대한 메시지는 이미 그러한 가능성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통해 단순히 강대국 경쟁으로부터 노정되는 위기만을 관리하겠다고 한다면 한국 외교는 현상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하고 한국의 위상도 제고할 수 있는 ‘국익’ 중심 외교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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