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로빈 월 키머러/ 노승영 옮김/ 다산초당/ 1만6800원
‘향모를 땋으며’, ‘이끼와 함께’를 쓴 미국 식물생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로빈 월 키머러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집어들 독자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키머러는 토착 지혜를 바탕으로 자연을 깊이 관찰한다. 그는 이야기를 부리는 눈부신 솜씨로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전달한다.
원제는 ‘서비스베리(The Serviceberry)’. 국내에선 ‘채진목’으로 불리는 베리다. 흔하디 흔한 열매에 불과하지만, 저자는 막 수확한 베리 한 양동이 속에서 식물과 자연, 인간의 온갖 상호 연결을 읽어낸다. “단풍나무님은 잎을 땅에 내어주었다. 무수한 무척추동물과 미생물은 영양소와 에너지를 교환하여 부식질을 만들어 서비스베리님의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했다. 애기여새님은 서비스베리님의 씨앗을 땅에 떨어뜨렸다. 해, 비, 이른 봄의 파리는 꽃가루받이를 했다. 농부는 어린나무가 자리 잡도록 삽을 놀려 땅을 세심하게 다듬었다.”

이처럼 자연은 서로 베풀면서 순환하고 성장한다. 새들은 서비스베리를 먹어치우지만 여기에조차 베풂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새의 장을 통과하면서 씨앗의 껍질이 녹아 발아가 자극되기 때문이다. 내어줌으로써 순환하고 번영하는 자연의 경제 체제와 대조적으로, 인간이 신봉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결핍을 조장한다. 자연이 그토록 풍요로움에도 식량과 깨끗한 물, 숨 쉴 공기, 비옥한 토양이 부족하게 여겨지는 건 의도된 결핍 탓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돌아가려면 결핍이 있어야 한다. 이 체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결핍을 만들어내도록 설계되었다.”
저자는 루이스 하이드의 저서 ‘선물’에 제시된 ‘선물 경제’의 비전을 제안한다. 선물 경제에서는 지구의 풍요로움을 착취해야 할 자원으로 보지 않는다. 미래의 결핍을 가정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축적할 필요도 없다. 필요한 만큼 축적하고 사용하며, 깨끗하게 유지할 책임을 지고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과 나눌 뿐이다. 나눔은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공동체의 안정은 상호성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저자는 자연의 관계 맺음을 조명하는 큰 질문들을 던지며 생태학과 경제학, 윤리학을 아우른다.
저자의 희망적 언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 아니다. 선물 경제는 어디에나 있다. 친구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친지의 아기에게 유아차를 물려주고, 너무 많이 수확한 농작물을 이웃에게 나눠 주는 행위, 여기서 흐뭇한 미소를 주고받는 일이 선물 경제의 핵심이다. 내어주는 행위는 호혜성의 물꼬를 튼다. 서비스베리가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책은 약 150쪽에 불과하다. 존 버고인의 아름다운 삽화와 조화를 이뤄 한달음에 읽힐 수 있다. 저자의 언어는 생태 파괴와 극한 경쟁, 고립의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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