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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대 옥중서 “긴급조치 해제” 외친 청년, 46년 만에 재심서 무죄

입력 : 2025-06-04 18:57:30 수정 : 2025-06-04 18: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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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를 비판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돼 있던 중 옥중에서 긴급조치 해제 구호를 외쳐 또다시 기소된 김용진(69)씨가 46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는 4일 김용진씨의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사건 재심 공판에서 “이번 선고가 단순히 피고인이 과거에 겪었던 고초가 잘못됐음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가 긴급조치 제9호 위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지 46년 만의 무죄선고다. 

 

김 씨는 서강대 국어국문과 2학년 재학 중이던 1977년 학내에서 민주화 시위를 하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1978년 6월 서울구치소와 그해 10월 공주교도소에서 각각 “긴급조치 해제하라”고 구호를 외쳐 또다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이듬해 4월 징역 1년 6개월이 추가됐다. 

 

유신헌법을 토대로 한 긴급조치 9호는 공중전파 수단이나 표현물 등으로 유신헌법을 부정한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긴급조치 9호를 위헌으로 결정했고, 대법원도 같은 해 위헌으로 판단했다.

 

위헌 결정 직후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잇달았고, 김씨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학내 민주화 시위 사건에 대해서 당시 동료들과 함께 재심 절차를 진행해 10여년 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가 오랜 기간 잊고 있던 옥중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때다. 

 

김씨는 비상계엄을 계기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환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재심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무효임이 분명하다”며 “이 사건은 적용 법령인 긴급조치 9호가 당초부터 위헌·무효인 만큼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김병만 부장판사는 무죄 선고 후 과거 유죄 판결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이번 판결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유죄를 선고한 것도 대한민국 법원이고, 무죄를 선고한 것도 대한민국 법원”이라며 “피고인이 겪었던 고초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 구성원으로서 늦었지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선고가 단순히 피고인이 과거에 겪었던 고초가 잘못됐음을 그치지 않고, 피고인이 최후 진술에서 말씀하신 취지와 같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며 “국내 상황이 혼란스럽고 사법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제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안정적으로 정리돼 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또 “이런 과정은 우연히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이 사건처럼 어두웠던 과거를 바로잡는 게 축적이 돼 가능한 것”이라며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던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재판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의 말은 지난달 16일 열린 첫 공판 최후 진술에서 김씨가 한 말에 대한 화답이다.

 

김씨는 당시 “민주주의의 역사는 앞선 세대가 쓰던 작품을 다음 세대가 이어 써가는, 연작 소설과 같다”며 “저는 다음 세대가 쓸 작품이 훨씬 더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판결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재판장님 말씀처럼 이런 과정이 축적돼야 한다. 과거가 현재 우리를 구했듯이 현재의 우리가 미래의 후손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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