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전쟁 여파 대외 불확실성 고조
투자심리 위축·경기 부진 악순환 지속
정부 재정 투입 대규모 부양책 불가피
AI 생태계 조성 구체적 지원전략 필요
제조업 등 전통산업 설비 현대화 병행
인구감소 대응 ‘노동개혁’도 서둘러야
새 정부는 전례를 찾기 힘든 경제 ‘불확실성’ 속에 출범한다.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내수는 빠르게 가라앉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촉발한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며 지난달 대미·대중 수출이 8% 넘게 주는 등 수출 전선은 어두워지고 있다. 한국은행 등 주요기관이 올해 한국 성장률이 0%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도 위협요소(리스크)가 ‘복합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한국 성장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던 2020년(-0.7%) 외에 없었다.
우선 경기진작 효과가 큰 사업을 선별해 신속하게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마련, 얼어붙은 내수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과 같은 ‘게임 체인저’ 분야에 마중물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제조업 등 전통산업의 설비를 현대화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작업도 병행해야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인구오너스(생산연령인구 줄면서 성장 지체) 시대에 발맞춰 안전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노동시장 유연화를 가능케 할 노동개혁도 이뤄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추경 불가피… 정부 재정 활용해야”
3일 경제계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두 축인 내수와 수출 모두 불안한 상황이다. 소매판매는 2022년 2분기부터 12개 분기 연속 전년 동분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서비스업생산 중 소비와 밀접한 숙박·음식점업도 2024년 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14개월 연속 줄었다. 건설업 부진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건설경기를 보여주는 건설기성(특정시점까지 시공실적, 불변)은 지난해 5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1월(-27.4%), 2월(-19.8%), 3월(-16.3%), 4월(-20.5%)에도 큰 폭의 감소세가 이어졌다.
문제는 미국 관세전쟁 여파로 수출이 줄고, 기업 투자심리가 줄어드는 등 대외 불확실성이 다시 내수를 위협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미 수출액은 4월과 5월에 각각 6.8%, 8.1% 줄었다. 관세충격은 기업심리도 악화시켜 제조업 설비투자전망 BSI(90)는 장기평균(95)을 밑돌고 있다. 경기 부진에 취약계층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이 3.6% 줄고, 청년층 고용률은 최근 1년 뒷걸음질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한은도 올해 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이라 예측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날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5%에서 1.0%로 하향 조정했다.
결국 정부가 건설경기 회복과 소상공인 매출기반 확충 등을 위해 재정을 풀어 내수에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너무 낮다. 수출이 잘되면 좋은데 국제무역환경도 그렇지 않아서 대규모 추경과 같은 경기 부양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허진욱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건설업 부진은 건설비용 증가, 사회간접자본(SOC) 포화로 인한 한계생산성 하락 등으로 인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만큼 정부는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건전화를 지속하는 등 건설경기 연착륙을 지원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AI 더해 전통산업도 투자 늘려야”
추락하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는 것은 새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장기 과제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기초체력으로, ‘노동’과 ‘자본’ 및 기술진보·자원 배분 효율성 등에 따라 좌우되는 ‘총요소생산성’의 합으로 도출된다. KDI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5∼2030년 1.5%를 기록하다 2031∼2040년에는 0.7%까지 하락한다. 저출생·고령화 속도를 늦추는 가운데 총요소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먼저 AI 혁신 생태계 조성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한국은 미·중처럼 물량공세를 할 수 없기에 AI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할 때 목표와 기대효과가 무엇인지 방향을 정하고 가야 하는데 지금은 모호한 상태”라며 “전략적으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며 “국제적인 지형도를 봤을 때 우리가 비빌 언덕이 있는 의료·제조 등 산업 기반을 활용해 AI 활용 스킬을 키우는 것이 한국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길”이라고 조언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AI 정책과 관련해 지난 정부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를 포함한 하드웨어,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등 소프트웨어, 데이터 활용 규제가 계속 지적됐지만 이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대선 주자는 없었다”며 “새 정부에서는 막연한, 선언문 위주의 정책이 아닌 정말 디테일한 AI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통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지난해 기준 300인 미만 중소기업 취업자는 2543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89.0%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대기업 근로자 평균소득(2023년 12월 기준)은 월 593만원(세전 기준)으로 중소기업(298만원)의 1.99배에 달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 경제의 생산성 향상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AI는 국가가 아니라도 규제만 풀어주면 민간에서 투자할 사람이 많다”면서 “민간이 하기 힘든 쪽에 정부가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중소기업이 많은 전통산업은 설비가 굉장히 노후화돼 있는데 먹고살기 힘들어 교체를 못하고 있다”면서 “중소·중견기업의 각종 설비를 AI나 각종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현대화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산연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을 대비해 노동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진욱 교수는 “인구감소 및 고령화에 대응해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자리와 구직자 간 매치(match)가 효과적으로 이뤄지도록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이 여전히 부진한데, 보육시설 확충, 육아휴직제도 확대 등을 지속해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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