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서 인터밀란 5-0 완파
佛축구 사상 첫 ‘트레블’ 위업
엔리케표 ‘젊은 피 육성’ 주효
스타 없이도 세계적 강팀 변모
유럽 2번째 ‘3관왕 2회’ 감독에
이강인은 결승 무대 못 밟아
프랑스 리그1 파리 생제르맹(PSG)이 2024∼2025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우승 트로피(빅이어)를 들어올린 1일 경기 종료 후 독일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 관중석에 거대한 현수막이 펼쳐졌다. 팬들이 준비한 현수막에는 루이스 엔리케(55·스페인) PSG 감독이 환한 표정으로 막내딸 사나와 함께 PSG 깃발을 그라운드에 꽂고 있었다. 2015년 스페인 FC바르셀로나를 이끌던 엔리케 감독이 팀을 UCL 정상에 올려놨을 때, 어린 사나가 구단 깃발을 들고 내려와 함께 그라운드에 꽂았던 장면을 PSG 깃발로 재연한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이날 사나는 없었다. 9살이던 2019년 8월 골육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엔리케 감독은 이후 ‘사나재단’을 설립해 골육암으로 고통받는 아이들과 그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바르셀로나에서) UCL 우승 후 딸과 함께 찍은 멋진 사진이 기억난다. 바르사 깃발을 꽂고 있었다”며 “PSG에서도 같이하고 싶다. 내 딸(사나)은 육체적으로 함께하지 못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함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기억한 PSG 팬들이 엔리케 감독에게 현수막으로 뜻깊은 선물을 건넨 셈이다.
우승 직후 검정 티셔츠로 갈아입은 엔리케 감독은 아빠와 딸로 보이는 만화 캐릭터가 PSG 엠블럼이 새겨진 깃발을 함께 꽂는 모습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우승 세리머니를 즐겼다. 프랑스 매체 레키프에 따르면, 엔리케 감독은 우승 후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전 이기든 지든 매일 딸을 많이 생각한다. 그(아이)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PSG는 이날 UCL 결승에서 이탈리아 인터밀란을 5-0으로 완파하고 1970년 창단 이후 55년 만에 빅이어를 품에 안았다. 올 시즌 리그1과 쿠프데프랭스(프랑스컵)에 이어 UCL 정상까지 밟으며 프랑스 축구 역사상 첫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단판 대회인 슈퍼컵 우승까지 더하면 올 시즌에만 트로피 4개를 수집했다.
PSG가 비로소 명실상부한 세계적 강팀이 된 것이다. PSG는 2011년 카타르 왕족 자본 손에 들어간 이후 리오넬 메시(38·인터 마이애미)와 네이마르(33·산투스), 킬리안 음바페(27·레알 마드리드) 등 슈퍼스타를 끌어모으며 14시즌 동안 11차례 리그1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 최강의 팀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메이저 대회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해 ‘우물 안 개구리’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엔리케 감독이 2023∼2024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으면서 달라졌다. ‘그라운드의 건축가’로 불리는 엔리케 감독은 전술적 유연성을 더하기 위해 젊은 선수 육성이 필요하다며 구단 수뇌부를 설득했다. 수비에 소극적인 음바페를 내보내고 데지레 두에(20·프랑스)와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24·조지아), 이강인(24) 등을 영입해 PSG가 메시와 네이마르, 음바페 없이도 강팀이 될 수 있도록 조련했다. 두에는 UCL 결승에서 역대 최연소 득점과 어시스트(2골 1도움)를 동시에 기록할 만큼 무서운 선수로 자랐다. 이강인도 결승전을 비롯해 UCL 주요 경기는 뛰지 못했지만 리그1 개막전에서 팀 1호골을 터트리는 등 UCL 11경기를 포함해 45경기에서 6골 6어시스트로 힘을 보탰다.

BBC는 “엔리케 감독이 이끄는 PSG가 스타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로 뭉쳐 올 시즌 주요 트로피를 싹쓸이했다”고 했고, ESPN도 “엔리케 감독이 슈퍼스타가 이끄는 팀이 아닌 젊은 선수와 조직력이 결합된 팀을 만들었다”고 호평했다. 엔리케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에서 두 번의 트레블을 경험한 페프 과르디올라(스페인)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장 반열에 올랐다. 축구 역사상 유럽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2회 달성한 지도자는 두 사람뿐이다. 엔리케 감독은 감격이 쉽게 가시지 않은 듯 사나와 함께한 그림으로 거듭 눈길을 돌렸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