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17년엔 메르켈의 악수 제안 거부
AfD 등 국내 문제 거론되면 분위기 해칠 수도
프리드리히 메르츠 신임 독일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대면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공’ 모드에 돌입했다. 최근 몇몇 나라 정상이 백악관에 들어갔다가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공세에 톡톡히 곤욕을 치른 사례들 때문이다. 더욱이 독일은 2017년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갓 취임한 트럼프에 의한 ‘모욕 주기’ 외교의 첫 희생양이 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5월31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이날 메르츠가 오는 6월5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했다. 취임 후 1개월가량 지난 메르츠가 트럼프와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르츠는 트럼프와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공동 기자회견도 가질 예정이다.
메르츠 본인은 물론 총리실과 외교부 모두 정상회담에 앞서 철저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개시에 앞서 트럼프로부터 미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고 결국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전례를 감안해서다.
트럼프는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영토를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는 젤렌스키에게 “전쟁을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냐”고 윽박질렀다. “당신은 아직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하니 준비가 되면 다시 오라”며 아예 백악관 밖으로 쫓아냈다. 트럼프는 라마포사에게는 “남아공에서 백인 농부들이 흑인들에게 집단적인 살해를 당하고 있다”고 뜻밖의 의혹을 제기했다. 당황한 라마포사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회담이 그만 종료하고 말았다.
이에 메르츠는 젤렌스키와 라마포사는 물론 그간 트럼프와 만난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전화해 트럼프와의 첫 대면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구하고 있다. 트럼프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도 메르츠의 자문 요청에 응한 정상들이라고 dpa는 전했다.
최근 독일 공영방송 ZDF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츠는 “(트럼프와 나는)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점도 많으며 바로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와) 침착하고 합리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진정제 복용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말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독일 정부로서는 트럼프와의 관계에 일종의 트라우마를 느끼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7년 3월 당시 총리이던 메르켈은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와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했다. 트럼프는 메르켈의 악수 요청을 거부하고 시선을 돌려 메르켈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역내 2위의 경제 대국이면서 방위비 지출에 소극적인 독일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트럼프 취임 후 외국 정상의 면전에서 모욕 주기 행태를 보인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이번 메르츠와 트럼프의 회담에서 만약 독일 국내 정치 문제가 거론되는 경우 분위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독일 정보기관이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AfD)을 우익 극단주의 정당으로 지목해 감시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에 메르츠는 “이것은 우리의 문제”라며 “미국 정부가 아니라 우리가 이 문제를 결정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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