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보니 글쓰기, 그것도 인생을 재료로 본인이 경험한 사실을 가공해 쓴 소설을 놓고 토론하는 강의를 하다 보니 다양한 수강생을 만나게 된다. 재주가 뛰어나고 열정도 많아서 얼른얼른 세상에 자기 이름을 알리는 수강생은 당연히 기억난다. 또 열정은 있음에도 육아에 지쳐 있던 수강생, 회사 일이 많아 등록은 해놓고도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직장인 수강생도 많이 기억난다. 그 가운데 사실 요즘 가장 많이 기억하게 되는 수강생은 나이가 지긋하셨던 어르신 수강생이다.
코로나19가 오기 이전에 주로 교실에서 수업할 때는 어르신 수강생들이 한두 분 꼭 계셨다. 그분들은 늘 수업에서 적당히 뒷자리에 앉아 계셨고, 다른 사람 작품에 대해 코멘트할 때는 젊은이들에게 많이 배운다고 먼저 말씀하시곤 했다. 그분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은퇴나 사별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꼭 숨긴 채 열심히 글을 썼다. 때로는 직접 키운 상추나 애호박을 쇼핑백에 담아서 먹어보라고 주셨다. 이분들을 호명할 때 나도 모르게 이름 뒤에 ‘어르신’ 혹은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이기도 했는데, 다른 수강생들에게 하듯 동일하게 ‘아무개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씀하셨다.
누군가 나이가 들어서 해볼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일이 글쓰기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으니까. 그러나 가끔 그분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먹을 게 없어 고생하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다 쓰셨는지, 자서전 마무리는 다 하셨는지, 출간을 목표로 하던 에세이집은 출간이 되었는지, 무엇보다 건강하신지, 그리고 주변도 모두 평안하고 여일한지도.
지금은 모든 강의를 비대면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수강생 얼굴을 잘 모른다. 그리고 예전보다 어르신 수강생 수가 확연히 줄었다. 앞으로 어르신 수강생을 만나게 된다면 소설을 왜 그분 자신의 만년의 예술 혹은 존재의 양식으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더 상세히 질문해보고 싶다. 그리고 더욱 친절히, 한 줌도 안 되지만 짧은 내 경험을 어르신 수강생들에게 더 열심히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들의 얘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강영숙 소설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