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당에 위치한 한정식집에 들어서니 40~50대에 익숙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왔다. “마주 잡은 손길로 같이 있게 해주세요∼” 80년대 초 제법 인기를 끌었던 부부 가수 ‘동그라미’의 ‘같이 있게 해주세요’란 노래였다.
연일 손님으로 바글바글한 이곳 식당의 주인이 다름 아닌 ‘동그라미’의 멤버 윤해정이었다. 하지만 부부 가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그는 혼자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또한 얼굴에 짙게 팬 상처와 깊은 눈빛은 그가 보내온 시간들이 결코 순조롭지만은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
지난 22일 MBN ‘특종세상’에는 윤해정이 등장해 다사다난했던 지난날을 돌이켰다. 그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은퇴와 이혼, 전 재산 100억을 날린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놨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결혼해 딸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하지만 어느 날 아기를 재우려고 부른 노래 소리를 들은 남편에 의해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윤해정은 “남편은 결혼 전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가수 지망생이었어요. 결혼 후에는 맞춤 수선집을 운영했는데, 제 노래를 듣고는 부부 듀오를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대했지만, 남편은 가수의 꿈을 접지 못 했던 모양이에요”라고 서두를 열었다.
윤해정이 완강히 반대하자 남편은 “그럼, 기념 앨범이나 하나 만들자”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윤해정을 이끌고 평소 알고 지내던 작곡가 사무실로 찾아갔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노래가 ‘그대여’가 실린 데뷔 앨범이었다.
‘그대여’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방송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가요 프로그램에서 인기순위 상위에 오르는 등 섭외 제의가 들끓었다. 그렇게 윤해정은 남편과 부부 듀오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1982년에 발매한 2집 ‘같이 있게 해주세요’가 초대박을 터트리며 돈방석에 앉았다. 윤해정은 “정말 기적 같았다. 자고 일어나니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어 있었다. 매일 제 허벅지를 꼬집어봤다”라며 “하루에 열 군데 이상 밤무대를 뛰었는데 두어 달 만에 그때 금액으로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벌었다”라고 밝혔다. 노래는 각종 인기차트 1위를 휩쓴 것은 물론, 부부 듀오라는 이미지도 한몫해서 각종 프로그램의 출연 섭외가 줄을 이었다. 출연료도 점점 높아지며 인기는 날로 치솟았다.

그러나 1년 후인 1983년,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취를 감췄다.
윤해정은 “돈이 불어나고 여유가 생기니 남편이 여자와 노름에 빠졌다”라고 털어놨다. 부부 듀오였기에 남편 없이 혼자 무대에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방송 스케줄은 줄줄이 펑크가 났고 윤해정은 차마 남편이 가출했다고 변명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방송에서 퇴출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자신 몰래 진 빚 때문에 빚쟁이에게 시달려야 했고 혼자서 남은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며 체념하고 있을 무렵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이혼도장을 내밀며 “내가 진 빚이 너무 많아 당신한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서류상으로 이혼하고 나중에 다시 합치자”라고 말했다. 윤해정은 “자기를 믿어달라고 눈물을 흘리길래 믿어줬죠. 그래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어요”라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새사람이 되겠다던 남편은 이혼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던 날, 차려준 저녁을 먹고는 나가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그날부터 다른 여자와 밤무대 출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윤해정은 생계를 위해 혼자 노래를 이어갔다. 하루에 12개 업소를 뛸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심한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해 얼굴이 일그러져 깊은 흉터가 남았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노래 인생이었다.
여자 혼자 밤무대를 뛰다 보니 추근거리는 남자들도 허다했다. 매일 찾아와 사귀자고 유혹하는가 하면 무대에 올라와 껴안으려는 손님도 많았다. 심지어 납치를 당해 여관까지 끌려갔다 빠져나온 일도 있었다.

환멸을 느낀 윤해정은 노래 생활을 접고 1995년부터 요식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개업한 지 사흘째부터 하혈을 보였다. 난소암이었다. 의사는 그에게 수술과 항암치료에 적어도 1년 이상은 걸릴 것이고 그동안은 전혀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던 그는 수술을 끝낸 직후부터 링거주사를 꽂고 육수와 소스를 개발했다. 그러다가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 일쑤였다. 무리한 탓인지 암세포가 간과 폐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항암치료와 식당 일을 병행했다. 그런 열정 때문이었을까, 마침내 고객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개발할 수 있었고 전국에 체인점까지 내며 약 100억원의 재산을 얻을 수 있었다. 암세포도 1년간의 항암치료가 끝나자 기적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업이 대박남과 동시에 주변에 사기꾼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방송을 통해 ‘100억원의 자산가가 됐다’라는 근황이 알려지며 호시탐탐 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접근해왔다. 윤해정은 “쉽게 남을 믿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사기 결혼도 당하고 부동산 사기도 당하고…결국 사기꾼들 때문에 전 재산을 잃고 파산 직전까지 갔다”라고 털어놔 놀라움을 안겼다.

윤해정은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진짜 저같이 기구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다른 사람들의 몇 배의 인생을 사는 것 같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윤해정은 전 남편이 고인이 된 사실도 알렸다. 윤해정은 “어느 날 딸이 막 울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엄마, 아빠 돌아가셨어’라고 하더라. 어떻게 알았냐니까 호적을 떼러 갔는데 거기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더라. 그게 벌써 4, 5년 전이다”라고 전했다.
사기 결혼에 이어 부동산 사기까지 당한 뒤 매일 술에 빠져 살았다는 그는 상실감에 안 좋은 생각까지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때 삶의 원동력이 돼준 건, 유일한 재산인 딸이었다”라고 밝히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딸이 옆에서 큰 힘이 됐다. 딸이 없었으며 전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다. 딸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고 예쁜 손자도 생겨서 제 삶의 희망과 목표도 갖게 됐다”라며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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