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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후변화 시대, 기술로 지키는 우리 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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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28 23:07:51 수정 : 2025-05-28 23: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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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보릿고개’를 견디게 해준 건 밀과 보리였다. 한때 전국적으로 재배되던 주요 작물이었던 밀 재배는 산업화와 식습관 변화, 수입 곡물 확대로 급격히 줄었다. 현재 국내 밀 자급률은 2% 내외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국제 곡물시장의 변동성이 곧 우리 식탁 위 빵 한 조각, 국수 한 그릇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기후변화는 밀 생산의 불안정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2년간 잦은 강우로 인해 밀 적기 파종이 어려워졌고, 수확기에는 생산량과 품질이 저하됐다. 앞으로도 기상이변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생산 기반을 지키기 위한 기술적 대응이 필요하다.

곽도연 국립식량과학원장

이에 국립식량과학원은 ‘무굴착 땅속 배수 기술’을 도입해 밀 생육 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김제 등 밀 생산지역 현장 실증 결과, 2024년 봄철 폭우 시 관행 재배 대비 수확량이 73% 증가했다. 또한 올해 1월 폭설 후 눈이 녹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배수효과로 인해 관행 재배 대비 토양수분이 낮게 유지됐다. 수분 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 땅속 배수 기술을 보급하면 전반적인 밀 습해를 경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품종 개발도 중요하다. 전통적인 품종 개발에는 약 14년 정도 시간이 소요되지만, 기후가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에는 그사이 재배 환경이 달라져 현장 적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국립식량과학원은 밀 품종 개발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 있는 ‘스피드 브리딩’ 기술을 활용해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스피드 브리딩 기술을 적용해 최근 육성한 제빵용 밀 ‘밀양53호’는 기존 품종인 ‘금강’·‘백강’보다 글루텐 함량이 높아 제빵 적성이 우수하다. 또한 밀 산업 밸리화 시범사업의 제분 업체, 베이커리 등과 협력해 1등급 밀가루 수율과 반죽의 끈적임 감소, 우수한 작업성 등 가공 적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우리 기술이 현장에 적용되어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하지만 기상 환경이 밀 생육에 불리해질수록 밀 품질은 최적의 환경조건에서 자랄 때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밀의 단백질 함량이 낮아지고 전분의 질적 조성이 나빠지면 면과 빵의 형태 유지가 어려워지고 상품의 품질이 낮아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밀의 활용도를 높이고 가공에 이용할 수 있도록 품질 수준별, 품종별 혼합하는 블렌딩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유럽식 빵에 많이 쓰이는 프랑스 밀 ‘T55’와 유사한 블렌딩 조합을 만들어 식품전문업체와 블렌딩 밀가루의 품질과 가공 적성을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기술 개발과 현장 적용은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무굴착 땅속 배수와 스피드 브리딩 등 현장에서 효과가 입증된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확산하고 블렌딩을 통해 품질 경쟁력까지 강화한다면 기후변화 시대에도 우리 밀의 생산 안정성과 산업적 가치를 높이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곽도연 국립식량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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