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 삼성의 외국인 타자 르윈 디아즈(28·도미니카 공화국)는 지난해 8월 루벤 카디네스(현 키움)의 대체 선수로 KBO리그에 첫 발을 내디뎠다. 1m93의 큰 키에 호쾌한 스윙이 돋보였던 디아즈는 지난해 29경기에 7홈런을 때려내며 가능성을 내보인 뒤 포스트시즌 9경기에서 5홈런을 폭발시키며 장타력일 인정받아 재계약에 성공했다.
KBO리그에서 풀타임을 처음 보내는 2025시즌. 디아즈는 자신이 재계약할만한 기량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했다. 마음이 조급했을까. 홈런을 노리는 큰 스윙으로 일관하다 컨택 능력과 선구안이 무너지며 4월초에는 1할 대까지 타율이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퇴출 얘기가 솔솔 나왔다.

그러나 시즌 중반으로 향하는 시점에서 디아즈는 10개 구단 통틀어 최고 수준의 외국인 타자로 거듭났다. 박진만 감독이 “우리 팀에 장타력이 있는 타자가 많다. 홈런만 중요한 게 아니다. 출루도 중요하고, 클러치 상황에선 단타로 기회를 연결시켜주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디아즈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 결과 장타력 잠재력이 폭발했다.
디아즈는 지난 27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롯데와의 홈 경기에서 7회 우월 투런 쐐기포를 때려내며 시즌 홈런 수를 21개로 늘렸다.
27일 기준 올 시즌 삼성이 치른 54경기에 모두 출장한 디아즈의 홈런 페이스는 경기당 0.39개. 단순 비례를 통한 산술 계산으로는 56개까지 가능한 홈런 페이스다.
56홈런은 KBO리그에서 상징적인 숫자다. 2003년 이승엽 현 두산 감독은 삼성 소속으로 그해 56홈런을 때려냈다. 여전히 KBO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으로 남아있는 기록이다. 몰아치기에 능한 디아즈의 폭발력이라면 22년 만에 대기록 경신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평가다.

지금의 홈런 페이스가 시즌 끝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적인 목표는 2015년 삼성 소속으로 뛴 야마이코 나바로가 작성한 외국인 타자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48개를 넘어서서 외국인 타자 최초의 50홈런이다.
목표를 낮게 잡아보면, 2011년 최형우(現 KIA)를 끝으로 맥이 끊긴 삼성 출신 홈런왕 타이틀 획득 가능성은 커 보인다. 디아즈는 이 부문 2위 오스틴 딘(LG 트윈스·16개)와 격차를 5개로 벌리며 독주채비에 들어갔다.
정작 디아즈는 최다 홈런 기록이나 홈런왕 타이틀에 큰 관심이 없다. 27일 경기를 마친 뒤 디아즈는 “기록과 숫자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며 “타격 타이밍을 유지하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꾸준히 홈런을 치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평정심을 잃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시즌 초반 정립한 타격 메커니즘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의 독특한 구조도 디아즈가 자신감을 찾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팔각형 구조인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는 가장 홈런이 많이 나오는 좌·우중간 펜스까지 거리가 홈플레이트부터 107m에 불과해 다른 구장보다 홈런을 때리기가 수월하다. 중장거리 타구를 많이 날리는 디아즈는 온 힘을 다해 타격하지 않아도 홈런을 때릴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따라서 그는 홈런보다 정확하게 타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디아즈는 홈 경기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다. 21개 홈런 중 16개를 홈구장인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터뜨렸다. 그는 홈구장과 관련한 질문에 “사실 삼성에 입단하기 전까지 대구라는 도시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지금은 대구가 내게 최고의 도시이고,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는 최고의 구장이다”라고 말했다.

대구는 ‘대프리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여름 무더위에 대한 악명이 높다. 디아즈도 이를 잘 알고 대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에 한국 땅을 밟은 디아즈는 “한국에 왔을 때 엄청 더웠다”며 “대구의 날씨를 경험했기에 올해 여름 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더운 날씨에서 경기를 치르면 체력이 떨어지기 쉽고 피로감도 빨리 찾아오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웨이트 훈련과 식단 조절에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구성원들은 디아즈의 활약이 시즌 끝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진영 삼성 타격 코치는 “외국인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선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디아즈는 적응 과정에 부침이 있었는데, 올 시즌 초반 한국을 방문한 가족들의 응원을 받고 많은 것이 바뀐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어 “디아즈는 그때부터 표정이 밝아졌고 자신 있게 타격을 펼치기 시작했다”며 “적응 과정을 마치고 자신감을 찾은 만큼 자신의 실력을 꾸준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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