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자결권은 소중해… 반드시 보호할 것”
“캐나다는 강하고 자유롭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캐나다 연방의회 개원식 기념 연설을 통해 던진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합병 위협에 시달리는 캐나다에 잔뜩 힘을 실어준 셈이다. 캐나다는 영국 국왕을 자국 국가원수로 섬기는 만큼 찰스 3세는 영국 국왕인 동시에 캐나다 국왕이기도 하다.

27일(현지시간)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이날 캐나다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개원식에 참석해 이른바 ‘왕좌의 연설’(The Speech from the Throne)을 했다. 영국 국왕이 캐나다 국왕 자격으로 개원 연설을 한 것은 지난 1977년 찰스 3세의 어머니이자 전임자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시절 이후 48년 만이다.
찰스 3세가 캐나다를 찾은 것은 2022년 즉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원래 2024년 캐나다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갑작스러운 암 발병과 치료로 연기됐다.
이날 연설에서 찰스 3세는 캐나다와 우방국들, 특히 미국과의 관계가 급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캐나다는 오늘날 또 다른 중대한 순간을 맞고 있다”며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난 수십 년간 캐나다인들에게 번영을 가져다 준 개방적 글로벌 무역 체제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반자 국가들과 캐나다의 관계 역시 바뀌고 있다”며 “많은 캐나다인이 급변하는 주변 세상에 불안과 우려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는 물론 우방국들에게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보호주의 무역 정책을 강화하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라고 부르며 공공연히 합병 의사를 드러냈다. 그는 엄연한 독립 주권 국가인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Governor)라고 낮춰 부르며 조롱을 가하기도 했다.

찰스 3세는 트럼프를 겨냥한 듯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법치주의, 자결권, 자유는 캐나다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라며 “정부는 이들을 반드시 보호할 것을 다짐한다”고 힘줘 말했다. 또 “캐나다는 선한 국가로서 그 행동과 가치관으로 계속해서 세계에 모범을 보여왔다”고 칭찬했다. 미국에 맞서 캐나다의 독립과 주권을 강조함과 동시에 캐나다가 국제사회에서 무시될 수 없는 주요 세력이란 점을 명백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찰스 3세는 캐나다 국가(國歌)의 한 구절을 인용해 “진정한 북쪽은 정말 강하고 자유롭도다(The True North is indeed strong and free)!”라고 외치는 것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여기서 ‘진정한 북쪽’이란 아메리카 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캐나다를 일컫는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이 캐나다를 묘사하며 사용한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 시민들은 모처럼 자국을 찾은 국가원수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갈등이 본격화한 뒤 캐나다에서는 ‘왕정 대신 공화정을 선택하자’는 주장이 다소 주춤하는 반면 ‘지금의 군주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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