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집권때도 주한미군 철수·감축 가능성을 시사했는데, 미국 우선주의를 더욱 노골화한 2기에서 이같은 가능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한국에 주둔한 미군 약 2만8500명 가운데 약 4500명을 괌을 비롯해 인도 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국방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주한미군은 6·25 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감축됐지만, 2007년부터 현재의 2만8500명을 유지하고 있다.
미8군을 비롯한 지상군 병력이 대부분이다. 미7공군 등 공군과 해군, 해병대도 포함돼 있다. 감축 검토 대상 4500명은 전체의 16% 규모다.
감축이 현실화한다면 한반도를 포함한 인도 태평양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반도를 벗어날 병력 4500명이 지상군 전투부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으로 미 육군 병력은 47만여명이다. 한국군보다 병력 규모는 적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다. 이는 미군이 지상병력 부족에 시달리게 하는 요인이다.
특히 20여년 동안 지속된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의 비정규전은 미 육군이 특정 지역에 발을 묶이게 하고, 미래전 대비를 늦어지게 한 원인이다.
아프간 철군으로 재정비와 재건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미 육군은 해·공군처럼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전투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주둔군은 단기간 내 감축하기가 어렵다. 인도 태평양 내 미군은 해·공군 위주다. 해안에서 먼 바다에 있는 적 함정을 공격하거나 내륙에서 작전을 펼치려면 지상군 병력이 필요하다.
주한미군은 지상군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주한미군에서 전투병력을 차출, 괌 등으로 이동시킨 뒤 다영역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재편하면 해·공군과의 시너지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중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등에 투입할 병력도 확보가 가능하다.
감축이 실현되면 주한 미 지상군은 본토 등에서 일시 전개 또는 순환배치되는 부대를 지원하는 전투지원부대나 정보부대 등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주한미군 핵심 기지인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를 확장한 의미도 퇴색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대만 침공 대비와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북한을 비롯한 다른 위협 대응은 동맹국들에 맡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는 피트 헤그세스 장관이 엘브리지 콜비 정책 담당 차관에게 ‘2025 국방전략’ 수립을 시작하라고 최근 지시했다.
국방전략은 미 본토 방어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억제를 우선하게 된다. 전 세계 동맹과 파트너의 비용 분담을 늘리는 것도 우선된다.
앞서 JD 밴스 미 부통령도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취임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전에 왔던 많은 사람(전직 대통령)과 다른 점은 첫 번째, 우리의 가장 귀중한 자원을 배치하는 방식에 있어서 아끼면서(sparingly) 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자원은 이 나라를 위해 군복을 입고 자신의 목숨을 내걸 의지가 있는 남녀”라며 “우리는 그들을 모든 곳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동맹이나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해 미국의 자원을 쓰는 데 소극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와 중국에 초점을 맞춘 국방전략에 주한미군 감축이 맞물리면, 미군은 중국 위협 대응으로 작전 비중을 옮기고, 북한 위협 대응은 한국군이 주도하는 방안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한국 국방부와 미군 지휘관들은 주한미군 감축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새뮤얼 퍼파로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최근 주한미군이 철수 또는 감축되면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 침공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 감축은 문제가 될 것(problematic)”이라며 “우리가 거기서(한반도에서) 제공하는 것은 동해에서 러시아에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 잠재력, 서해에서 중국에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 잠재력, 그리고 현재 작동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국방부도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핵심전력으로 우리 군과 굳건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억제함으로써 한반도 및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왔다”며 “앞으로도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미측과 지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주한미군 병력 변화는 한미 간 동맹의 정신, 상호존중에 기반해 양국 간 협의가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며 “한미안보협의회(SCM), 한미군사위원회의(MCM) 등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다음달 대선 직후 한·미 간 협상이 본격화하면, 한미 동맹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이나 전략적 유연성과 더불어 주한미군 규모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도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역할 범위를 북한에 맞서 동맹국인 한국을 지키는 것을 넘어 대만해협 위기 대응 등으로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전략적 유연성과 방위비분담금 인상, 병력 감축은 한반도 정세와 한미 동맹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관련 논의 과정에서 전력공백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한미군 일부 병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 전력공백이 발생하면, 이를 대체할 전력을 반드시 한반도에 투입하는 방향으로 미국측과의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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