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 영화는 변화를 약속한다. 방황과 흔들림 이후 회복되는 일상, 미래로의 도약이 미약하게나마 감지되는 결말은 청춘 영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성장을 약속한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가끔 ‘태풍 클럽’처럼 죽음이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처럼 소년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결말에 이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편의 일본 영화를 예시로 든 까닭은 최근 주목받는 한 편의 일본 청춘 영화에 있다.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일본 고등학생들의 흔들리는 우정을 그린다. 프레임 구도와 빛의 연출에서 오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 영화는 음악에서도 잔잔한 힘이 느껴진다. 네오 소라가 그리는 근미래의 일본 고등학교는 조지 오웰의 세계처럼 학교 교장이 감시 체계를 도입해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디스토피아의 축소판이다.
‘판옵티’라는 인공지능(AI) 감시 카메라가 학교 곳곳에 설치되고 만 것은 영화의 주인공인 유타(구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카 유키토)가 교장의 자동차를 세워두는 장난으로 교장을 화나게 만들어서다. 유타와 코우는 각별히 절친한 사이인데 세 명의 친구(아타, 밍, 톰)과 더불어 다섯 명은 음악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 다섯 명의 친구는 제각각의 배경으로 묘사되는데 아타는 귀여운 장난꾸러기, 밍은 중국계 일본인, 톰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이다. 장난을 쳤다는 이유로 동아리실과 음악 장비를 모두 빼앗긴 아이들은 몰래 장비를 빼내어 아지트로 옮긴다. 유타는 일본인으로 말썽의 주범이지만 학교 차원에서 내리는 징벌에서 가장 자유롭다. 그와 반대로 곤란한 처지의 인물은 재일한국인 4세 코우다. 유타와 함께 밤길을 걸었을 뿐인데 경찰은 코우에게 특별 영주자 증명서를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재일(在日·자이니치)’은 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을 지칭하는 가치 중립적인 표현이면서 일본 영화에서 드러나듯 때로는 차별의 뉘앙스를 드러내기도 한다. 재일조선인·한국인이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한 일본 영화로는 ‘고(GO)’, ‘피와 뼈’, ‘야키니쿠 드래곤’ 정도가 당장 떠오른다. 일본의 공문서나 학계, 언론에서 한반도는 여전히 ‘조선반도’로 기록되고 있다. 한반도를 가리키는 사라진 왕조의 이름은 제국주의 언어 유산과 맥을 같이 한다. 일본의 행정 체계에 남아 있는 ‘조선적(朝鮮籍)’에서 조선은 표기로만 남은 국적 미정의 구분이다. 일본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이니치란 조선적과 조선반도라는 말처럼 ‘실체 없음’에 적을 둔 유령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해피엔드’에서 재일한국인 코우는 그림자로만 남지 않는다. 교장실을 점거해 농성하는 학교 친구들에게 그는 김밥을 전한다. 혼란하면서 평화로운, 지진처럼 흔들리는 10대를 그리며 카메라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재일한국인을 중심에 내세운 ‘해피엔드’와 코우의 등장은 일본 영화의 흐름에서 반가운 변화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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