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김은주·강규리씨 증언 나서
“젊은 북한 군인들, 우크라전 파병
김정은의 돈벌이 수단 되고 있어”
北 대사 “인간쓰레기” 등 막말
유엔총회에서 처음 열린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고위급 회의에서 탈북민들이 자신이 경험한 북한의 인권 침해 참상을 생생히 전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이번 회의는 지난해 12월 채택된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에 따라 마련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인권이사회가 아니라 총회 차원에서 열린 북한인권 관련 고위급 회의는 최초다.

이날 회의에서 탈북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김은주씨는 “젊은 북한 군인들이 러시아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돼 현대판 노예제도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파병된 북한군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싸우는지, 왜 싸우는지도 모른 채 김정은 정권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탈북 과정을 회고한 책 ‘11살의 유서’를 8개 국어로 출판한 바 있다. 11살 때 굶주림 속에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김씨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인신매매를 당해 고초를 겪어야 했다고 전했다.
2023년 10월 가족과 목선을 타고 탈북한 강규리씨는 “5살 때 할머니가 토속신앙을 실천했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가 평양에서 시골로 추방당했다”며 “북한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종교나 신념은 김씨 가문의 세습통치를 정당화하는 주체사상뿐”이라고 비판했다. 강씨는 “북한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자유 억압의 구실로 활용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의 친구 중 세 명이 처형됐는데, 이들 중 두 명은 단지 한국 드라마를 배포했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처형당한 이들 중 한 명은 겨우 19살이었다고 강씨는 증언했다.
이러한 증언에 북한은 강하게 반발했다. 당사국 자격으로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북한의 김성 주유엔대사는 탈북민들을 향해 “부모와 가족도 신경 쓰지 않는 지구상의 인간쓰레기”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북한인권위원회 같은 인권 단체들은 한·미 등의 후원으로 선동과 조작을 하는 집단”이라며 “오늘 회의는 이런 사기꾼들의 생존을 위해 열린 것”이라고 비하했다.
북한의 이런 민감한 반응은 이날 회의가 타격을 입혔다는 방증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김은주씨와 강규리씨 같은 용감한 탈북민들의 가슴 아픈 증언은 이들이 피해온 (북한 당국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라고 밝혔다. 북·러 군사협력을 겨냥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제조한 무기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며 “북한이 개발하는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전 세계 비확산 체제와 국제 평화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 인권 전문가들도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국경 폐쇄와 국제사회로부터의 인도적 지원 제한, 정보 접근 차단 때문에 북한 주민의 생활 여건이 악화했다”며 “북한이 새로 제정한 법으로 인해 주민의 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노동권이 더 제한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이른바 ‘3대 악법’으로 불리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해 주민의 생활과 사상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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