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고환율 3高에 허덕
이자 감당 안돼 파산으로 내몰려
아파트 경매 2009년 이후 최대치
5대 금융지주 작년 이자이익 50조
역대급 이익에 구성원 처우 개선
금리 떨어져도 대출금리 인하 더뎌
예대금리차 커져 서민 고통 가중

“이자를 내려고 장사를 하는 것 같아요. 정작 내 손에 떨어지는 건 하나도 없어요.”
대구에서 청과물 도매상을 하는 50대 이모씨는 폐업을 고려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당시 아파트 담보와 신용으로 빌린 대출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매달 400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내느라 생활이 도저히 안 된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는 “나름 시장에서 신용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몇 달째 이자와 원금을 못 갚다 보니 가장 먼저 연락 온 곳이 은행이었다”며 “대출금리는 낮아질 줄 모르고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서 100만원도 못 가져가는 달이 많다 보니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은행은 좋은 날에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지만 나쁜 날에는 모든 걸 빼앗아 가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24시간 고객만족을 외치다가 비만 오면 태도가 돌변하기 때문이다. 햇빛이 짱짱한데도 우산을 씌워 주는 은행이 있는가 하면 비 올 때 우산을 뺏는 은행도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자영업자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이자 부담으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고, 이들 중 일부는 파산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실상 퇴출을 강요받고 있다.

◆파산 서민 급증…은행은 최대 이자이익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서민대출 연체율은 급등하며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저소득·저신용자를 위한 햇살론뱅크의 경우 이마저도 해결하지 못해 정책자금으로 대신 갚아주는 대위변제율이 16.2%까지 상승했고, 소액생계비대출 연체율은 30%에 달했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경제상황 악화와 경기 둔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서민들은 파산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며 마지막 보루였던 아파트마저 경매로 날리고 있다. 아파트 경매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미치던 2009년(12만4252건)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7만건대를 유지하던 아파트 경매 신청 규모는 2023년 10만건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 시기 고금리 지속으로 대출이자를 견디지 못한 이들이 늘어서다.

특히 저신용자들의 마지막 희망인 2금융권의 대출 문턱마저 높아지며 서민 파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3월 저축은행 79개사 중 3억원 이상 가계신용대출을 취급한 32곳 중 신용 점수 600점 이하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은 비율은 62.5%(20개사)로 집계됐다. 2023년에는 같은 기간 40.6%(13곳) 정도에 그쳤지만, 2년 사이 중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는 비율이 20%포인트 넘게 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 은행권은 역대급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5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기록한 이자이익은 50조3735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역대 최대 금액이다. KB금융이 전년보다 5.3% 증가한 12조8267억원, 신한금융은 5.4% 늘어난 11조4023억원을 올렸다. 하나금융은 소폭 뒷걸음질치며 8조7610억원에 머물렀지만, 우리금융이 2% 가까이 늘어 8조8863억원으로 하나금융을 앞질렀다. 농협금융은 소폭 줄어든 8조4972억원이다.
역대급 이익에 은행 구성원들의 처우도 대폭 향상됐다. 4대 은행의 2024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1840만원으로 전년(1억1628만원)보다 200만원 이상 늘어났다.

◆은행은 독과점…“다양한 경쟁 필요”
물론 은행의 이자이익과 서민들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긴 어렵다. 여기에 2023년 그룹별 수천억원에 이르던 일회성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피해배상 비용을 털어내고 비은행 관계사 실적이 개선된 측면도 반영됐다. 하지만 은행 이자의 기준이 되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이 장기간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은 점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년4개월 만에 2%대로 인하했지만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3.468~5.97%로 나타나 논란이 일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까지 나서서 직접적으로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대출금리를 내리긴 했지만 은행의 고금리 대출에 대한 논란은 한동안 이어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대금리를 줄이는 등 꼼수를 써왔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의 대출금리 산출 근거를 직접 점검하고 나서기도 했다.

기업인 은행이 이자수익을 직원들과 나누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역대급 금리 상승기에 일반 서민들은 등골이 휠 정도인데 은행들만 이자 장사로 혼자 배를 불리는 모습이 결코 곱게 보일 리 없다.
여기에 최근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가 커지면서 서민들의 불만도 늘고 있다. 3월 신규 기준 가계 예대금리차는 신한은행이 1.51%포인트, 하나은행이 1.43%포인트를 기록해 두 은행의 예대금리차가 각각 2년9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돈을 예치할 때와 빌릴 때의 차이가 큰 만큼 일반 서민들로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은행을 비롯해 다양한 경쟁구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른 은행 사업자들이 진출할 수 있게 해 은행을 더 만들어야 하고. 그다음에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자금을 끌어갈 수 있도록 예금 금리를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대금리차가 벌어지게 되면 은행들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며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 토스 등 온라인 은행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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