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일본 오사카 간사이 세계엑스포 한국관 내부. 긴 나팔관 안에 ‘후’하고 숨을 불어넣자 공중에서 공기방울이 떨어졌다. 산소와 수소가 만나 엔진을 돌리고 매연 하나 없이 물만 배출하는 친환경 기술을 형상화한 설치미술이었다. 공중에는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인 ‘넥쏘’ 엔진이 달려 있었다.
‘진심을 잇는 미래’를 주제로 꾸며진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이 관람객들로부터 호평 받고 있다. 한국관을 만든 고주원 총감독은 “총 120만명 방문을 계획했는데 현재 일 평균 1만1000명이 찾고 있어 총 관람객이 예상을 상회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찾은 한국관 바깥에는 긴 대기줄이 늘어서 있었다. 안내판에는 ‘예약하지 않을 경우 대기시간 40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설명·과시 매몰된 타국 대비 기획력 돋보인 한국관
10월 13일까지 운영되는 한국관은 오사카의 인공섬 유메시마 엑스포장 내 3501㎡ 부지에 지어졌다. 총 440억원이 투입됐으며 3개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한국관을 찾으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가로 27m, 세로 10m의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다. LG디스플레이 패널을 사용한 이 미디어 파사드는 단순 홍보영상이 아닌 미디어 아트가 상영된다. 관람객이 입장을 기다리며 서 있는 전시관 초입에는 288개의 한산모시가 겹겹이 거대한 차양을 드리웠다. 한산모시 모듈은 광화문 우진각 지붕의 곡선미를 차용해 만들었다.
한국관의 특징은 설명·보여주기·과시하기보다 자연스러운 체험과 감동에 중점을 뒀다는 점이다. 일부 아시아 국가관의 경우 1차원적인 설명을 나열해 기획력이 아예 부재하거나 국가 자체의 콘텐츠가 빈약해 보일 정도로 전시 수준이 높지 않았다. 일부 유럽 국가는 교과서적으로 빼곡한 설명이 벽면을 끊임없이 채우는 반면 볼거리는 거의 없어서 정보의 과잉 속 정작 정보의 부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국의 빛나는 역사와 미래를 모두 보여줘야겠다는 강박이 그리 세련되 보이지 않는 국가관도 있었고, 기념품을 일정금액 이상 구입하면 마사지 체험권을 주는 식으로 노골적인 상업성이 두드러진 국가관들도 눈에 띄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관은 구구절절 설명은 배제하고 메시지를 즐길거리나 볼거리, 체험으로 승화시킨 기획력이 돋보인다.


◆세 개 관에 인류 화합·환경·세대 간 연결 메시지
1관은 언어의 경계를 넘어 소리와 빛으로 인류가 하나 되는 세상을 표현했다. 관람객이 입장 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해 자국 언어로 답하면 전시관에서 이를 하나하나 재생해준다. 음악가 양방언의 작품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리듬·조명이 더해지고, 각국 언어로 표현된 ‘소중한 것’이 고조되는 음악과 함께 거대한 에너지로 화한다. 관람객이 함께 콘텐츠를 만드는 이 쇼는 10분마다 갱신된다.
2관에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콘크리트 더미와 공중의 수소연료전지 엔진으로 구성됐다. 기계 문명으로 황폐화된 도시가 한국의 기술로 생명을 회복하는 경험을 전한다. 고 총감독은 “한국의 독보적 기술이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 반도체·로봇·조선 등은 우리 고유의 독보적 기술은 아니라고 판단해 한국이 세계 첫 출시한 수소차를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3관은 음악을 통해 한국의 정, 공동체 의식과 미래세대와의 연결을 표현했다. 삼면을 둘러싼 거대한 스크린에 영상을 상영한다. 영상은 2025년 할아버지와 유년을 보낸 손녀가 2040년 우연히 할아버지가 남긴 악보를 발견하고 이를 완성해 과거 할아버지의 번호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세대와 가족간 정을 다룬 이 영상은 외국 관람객에게 특히 반응이 좋다고 한다. 한국관 서포터즈로 활동하는 일본 여성 스즈키 나나코(23)씨는 “3관 영상을 본 20대 서양분이 울면서 나오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할아버지와 손녀의 영상에서 자기 추억을 떠올렸다고 말씀해주셨다”고 전했다. 서포터즈로 주요(VIP) 손님을 안내하는 스미모토 나호(25)씨 역시 “VIP 손님 중에서도 3관을 보고 우는 분들이 꽤 많다”고 말했다. 나호씨는 한국관의 장점에 대해 “다른 국가관은 설명에 글씨가 많아 연세가 많은 분들이 읽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한국관은 그렇지 않고 몸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한국관 바깥에 재일동포 기념비 놓인 이유는
3개의 전시관뿐 아니라 출구에 놓인 ‘재일동포 기념비’도 의미가 깊다. 한국은 1970년 오사카 엑스포 당시 한국관을 건립하며 참가했지만 예산이 빠듯했다. 이에 신한은행을 창업한 이희건 등 재일한국인들이 후원회를 결성해 5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는 당시 한국관 건립 예산 200만달러의 4분의 1이나 됐다.
당시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은 55년만인 올해 참가국들의 관심을 받는 주요 국가로 엑스포를 빛내게 됐다. 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사장은 “이번에 엑스포를 한다고 하니 이희건한일교류재단에서 코트라 사무실로 부족한 것이 없는지 연락이 왔고 3억원을 기증했다”며 “감동스러워서 이를 받는 대신 엑스포장에 기념비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 기념비에는 재일동포 현황과 함께 6·25전쟁 당시 재일동포들이 청년학도의용군을 결성해 유엔군으로 참전하고 1960·70년대 재일 한국공관 10곳 중 9곳을 기증·모금으로 설립한 점, 88 서울올림픽 지원 성금 100억엔(약 541억원)을 한국정부에 전달하고 1997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780억6300만엔을 한국으로 송금한 역사가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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