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반복되는 산불 피해 앞에서 우리는 익숙한 논쟁을 되풀이한다. 산불의 원인을 소나무에 돌리거나 제도의 부재와 관리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러한 논쟁은 일정 부분 타당성을 갖지만 오늘날의 산불은 단순한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재난이자 기후위기 시대의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제는 산불의 원인을 단편적으로 따지기보다 지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식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숲은 탄소를 저장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생명의 터전이고 목재, 펄프, 바이오에너지 등 산업의 기반이 되는 자원이다. 그러나 불이 발생했을 때는 연료가 되는 위험한 공간이기도 하다. 즉 숲은 생명이자 자원이며 연료이다. 우리는 숲의 다양한 정체성을 인식하고 산불 관리 또한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논쟁의 주인공인 소나무의 발화성은 산불 확산의 주요 원인이 되곤 한다. 하지만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건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수종으로 산림생태적으로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현실적인 여건과 생태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소나무를 배제하고 숲을 관리하는 것 보다는 나무 사이의 간격 확보, 숲 내부 구조 조정 등을 통한 산불에 강한 숲 구조를 만드는 실질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큰 피해를 가져온 산불은 연료, 열, 공기 세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며 이 중 우리가 직접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연료뿐이다. 숲 내부 구조를 조절해 연료를 관리하는 방식은 산불 확산 속도와 피해 규모를 줄이고 초기 진화를 위한 황금 시간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다. 물론 강풍을 동반한 낮은 습도와 높은 기온과 같은 극한 기상 조건에서는 숲 구조, 수종과 무관하게 산불이 크게 확산될 수 있다. 그러나 기상 조건이 극단적이지 않을 때는 숲 관리가 산불 피해를 줄이는 선제적 대응 수단이 된다.
최근 일부에서 주장하는 자연상태 그대로 두는 관리는 생태적으로 바람직할 수 있지만 연료가 과도하게 축적되면서 산불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 숲이 변하고 발달해 가는 과정에서 쌓이는 연료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산불 위험도 방치된다는 것이다. 생태적 가치, 산불 위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 위험 수준에 따라 복합적인 관리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저위험 지역은 자연의 힘에 따른 방향으로 유도하고 고위험 지역은 숲의 구조 조절, 방화선 구축, 내화수림대 조성 등의 방법으로 적극 관리해야 한다. 인명·재산 피해 우려가 큰 생활권과 국가유산, 국가 기반 시설의 주변부터 우선 관리하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기존의 조림 방식에서 나아가 입지 특성에 적합한 침엽수와 활엽수가 혼효된 숲으로 전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체 수종 양묘 체계 강화, 활착 및 갱신 기술 개발 등 기술적인 기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자연의 힘에 맡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맹아림(그루터기 또는 뿌리에서 움이 자라 만들어진 숲)의 경우 일정시간 경과 후 생장이 제한되고 목재 내부가 썩어 목재로서의 가치는 없어진다. 따라서 좋은 나무의 씨앗에서 자란 묘목의 조림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숲의 약 68%는 사유림으로 산주가 주인이다. 산불 대응과 산림 관리 전반에 있어 산주의 참여와 선택이 큰 변수로 작용한다. 개인 소유의 산림이기 때문에 복구 또는 복원 시 수종 선정에 있어 산주의 의견이 반영되고 송이 생산을 위해 소나무를 선호해 식재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생태적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산주의 생계와 직결된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산주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려면 산불 예방-복구 단계에서 공공성을 고려한 관리와 선택에 인센티브 제공과 같은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숲을 산업의 기반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목재 자급률은 18%에 불과하며 산림사업이 축소되면 목재 자급률 하락, 수입 의존 심화, 임업 기반 붕괴, 실업, 목재 자원의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산 목재는 수입 목재보다 운송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적어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기여한다. 목재 자립은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국가적 책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목재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소나무를 포함한 침엽수의 식재를 일정 수준 유지하되 활엽수 자원화 기술 개발 및 생산 체계 구축을 병행해 생명-자원-위험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산불은 대부분 입산자나 성묘객 실화 등 사람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다. 불을 내지 않는 개개인의 책임 의식이야말로 실효성 있는 중요한 예방책이 될 것이다.
정부와 제도의 역할도 중요하다. 감시, 예측, 진화, 관리 체계 구축 및 강화를 비롯해 여러 정책이 마련되어 있지만 인력·예산·기술의 한계와 지형적 제약으로 인한 현장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 산불 대응에 필요한 자원을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이면서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산불 대응에 대한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숲은 생애주기가 긴 생태계다. 우리가 결정하는 어떤 선택이든 그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의 숲이 과거 결정의 축적이듯 오늘의 선택은 다음 세대의 환경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시간 속에 축적된 생태적 자산이 산불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는 복합적인 원인이 얽힌 산불재난 앞에 서 있다.
특정 원인을 지나치게 지목하고 책임을 돌리기보다 숲이 가진 다중적인 성격(多重林格)을 인식하고 현실의 한계와 가능성을 직시하며 개인과 국가가 함께 행동해야 할 때다. 이제는 소모적인 정(正)과 반(反)의 논쟁을 넘어 균형 잡힌 고민과 실천을 통해 진정한 '합(合)'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산불이 남긴 흔적 위에 함께 대응하는 사회의 힘으로 다시 숲을 일구어 나가야 할 때이다.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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