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급발진 운전자 무혐의 인정 사례…차량 책임 인정은 없어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손자를 잃은 운전자 할머니에 대해 경찰과 검찰은 무혐의 판단을 내렸으나 법원은 차량의 급발진을 인정하지 않았다.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한 무혐의·무죄 판단을 받긴 쉽지 않은데, 법원에서 급발진에 대한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받는 건 더욱 어렵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상준 부장판사)는 2022년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 당시 승용차 운전자 A씨(68·여)의 사고로 숨진 A씨의 손자 이도현씨(당시 12세) 유족이 자동차 제조사 KG모빌리티(KGM·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낸 9억2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사고 원인이 차량 결함이 아닌 운전자의 조작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사고 당시 A씨가 몰던 티볼리 승용차는 차량 배수로로 추락했고, A씨가 크게 다치고 동승자인 A씨의 손자 도현씨가 숨졌다.
유족 측은 해당 사고가 급발진으로 일어났다면서 제조사를 상대로 7억6000만원 규모의 민사 소송을 냈다. 이후 사고 당시 충격을 받은 A씨의 치료비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위자료가 추가 청구되면서 전체 손해배상 청구액은 9억2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유족 측은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발생했으며, 급가속 시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EB)이 작동하지 않아 이 사건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KGM 측은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한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 기록과 국과수 분석 등을 근거로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을 주장해 왔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검찰은 A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A씨는 사고와 관련 교통사고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형사 입건 돼 약 1년10개월간 수사를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의 기계적 결함은 없고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내렸지만, 경찰은 감정 결과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국과수 분석이 실제 엔진을 구동해 검사한 결과가 아니고, 제동장치의 정상작동 여부와 예기치 못한 오작동도 파악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지역사회에선 A씨를 선처해 달라는 탄원이 줄을 잇기도 했다.
결국 검찰도 경찰의 혐의가 없다는 수사 결론을 한차례 반려한 끝에 송치요구 불요 결정을 내리며 형사 절차는 마무리됐다.
차량 급발진 주장이 끊이지 않지만 이에 대한 무죄 판결이나 손해배상 결정을 받은 법원 판결은 많지 않다.
형사사건에선 2008년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무죄를 확정 지은 사례가 있다.
2005년 11월 서울 마포의 한 일방통행 도로에서 역주행 사고로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사건과 관련 검찰은 대리운전자 박모씨를 구속기소 했다.
박씨는 “일방통행로 끝에 있는 식당 앞에서 대리운전 의뢰인의 차량에 시동을 켜고 가속페달을 약하게 밟는 수간 차량이 굉음을 내고 급발진해 시속 100㎞ 이상으로 고속 주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는 운전경력 20년의 박씨가 사고 직후 음주 및 약물검사에서 정상판정을 받았고 사고 차량을 매수한 다른 운전자도 차를 뒤로 빼려고 할 때 앞으로 튀어나가는 사건을 경험한 점에 주목했다.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역주행 초기부터 브레이크등이 켜진 정황도 박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제반 사정에 비춰볼 때 박씨가 의도적으로 역주행했다고 보기 어렵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며 “박씨가 조향·제동장치를 정확하게 조작하지 않았다는 검사의 기소 내용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제조사의 급발진 사고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도 있기는 하다.
2001년 서울의 한 사설 주차장에서 주차관리원 이모씨가 운전한 차량이 빠르게 후진, 왕복 2차선 도로를 횡단 길 건너편 벽과 부딪친 뒤 다시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이와 관련 서울 남부지원 민사36단독 류제산 판사는 급발진 사고 차량의 보험사인 삼성화재보험이 자동차 제조사인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기아차에 118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인천지법에서도 2002년 대우자동차와 대우자동차판매를 상대로 배우 송승헌씨의 아버지 등 42명이 낸 급발진 주장 사건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18년엔 ‘BMW 역주행 사건’ 2심에서 BMW가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유족에게 4000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있었다. 다만 아직 대법원이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한 확정판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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