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신임 음악감독에 선임됐다. 1778년 개관 후 토스카니니,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무티, 다니엘 바렌보임 등 당대 최고 지휘자만이 맡아온 영예의 자리다.

12일 이탈리아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라 스칼라 극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리카르도 샤이 현재 음악감독 후임으로 정명훈을 선임했다. 정 내정자의 임기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다.
라 스칼라는 파리 오페라 극장, 빈 국립 오페라 극장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손꼽힌다. ‘오페라의 성지’로서 주세페 베르디의 나부코(1842)와 푸치니의 나비부인(1904) 등 수많은 명작이 이곳에서 초연됐을 정도다. 특히 주세페 베르디는 라 스칼라와 깊은 인연을 맺어 여러 작품을 이 극장에서 처음 선보였다. 라 스칼라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거치며 수많은 거장 성악가와 지휘자를 배출했다. 20세기에도 토스카니니와 아바도, 무티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상임을 역임하며 전설을 이어갔다. 2차 세계대전으로 극장이 파괴된 후 1946년 재개관 음악회를 토스카니니가 지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명훈은 1989년 이래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정기적으로 지휘하며 오랜 기간 협력해 왔다. 9개의 오페라를 지휘하여 84회 공연하고 141회 콘서트를 가졌다고 한다. 2023년에는 라 스칼라의 관현악 단체인 필하모니카 델라 스칼라로부터 역대 첫 명예지휘자로 추대된 바 있다. 라 스칼라 측은 지난 3월 정명훈의 음악회가 성황리에 개최된 사실을 언급하며 “정명훈은 역대 음악감독들을 제외하면 라 스칼라 극장의 국제적 위상을 가장 크게 높인 지휘자”라고 평가했다.

1974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공동 2위를 차지하며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정명훈은 1978년 미국 LA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지휘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1980년대부터 유럽 무대로 진출한 정명훈은 1989년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현 파리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에 올랐다. 이후 프랑스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과 서울시립교향악단 등을 이끌며 수많은 무대에서 영감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로 명성을 높여왔다. 정명훈의 이번 라 스칼라 음악감독 선임은 클래식 음악의 세계화와 다양성 확대를 나타내는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