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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고요한 몸짓… 끊임없이 뛰는 생의 맥박을 느끼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입력 : 2025-05-13 06:00:00 수정 : 2025-05-12 20: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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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속삭임: 호크마 김의 나무들

작가와 나무 사이 오간 무언의 대화
치유·회복의 순간 비밀스럽게 다가와
그림 속 이름 모를 나무와 눈 맞추면
바라볼수록 색채 등 향 더 또렷해져
나무를 영적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
북미 원주민의 자연관 떠오르기도

유난히 길고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녹음이 온 대지를 뒤덮은 5월이 되었다.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기후 위기의 시대. 그래서인지 계절의 변화가 유독 급작스럽게 느껴진다. 도무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계절도, 절기가 다가오면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빼꼼 내밀고 새로운 풍경을 찬란하게 펼쳐낸다. 자연은 틀리는 법 없이 언제나 완벽하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조용히 결실을 맺고, 때가 되면 거두며, 다음을 위해 조용히 숨을 고른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生)의 맥박. 나무는 그 고요한 리듬 속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조급해하거나 불평하지 않으면서 충실하게 변화한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품고 있다.

‘바로 그 오두막에서, 새순이 돋다’ (138.5x586cm)

◆나무와의 여정

호크마 김은 나무의 고요한 몸짓과 흐름에 감각을 기울이며 생명과 존재의 본질을 사유한다.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뉴질랜드의 기울어진 나무들, 길을 걷다 마주친 거대한 버드나무의 흔들림,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제주의 이름 모를 나무, ‘온몸으로 별을 쏟아내는’ 단풍나무 등 세상의 모든 나무 속에서 그는 세상을 본다.

나무와의 여정은 짙은 고민과 아픔을 품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나무 앞에서 시작됐다. “나는 그냥 늘 여기에 있어.” 어떤 조건도, 생각도 덧붙이지 않고 생명으로 존재하는 나무의 삶의 방식이 갈라진 마음의 틈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서로에게 별종일지도 모를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다른 무엇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명을 지닌 존재들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하기에 존재하는 그 자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나무는 말없이 전했다.

◆치유의 숲

6월 15일까지 금성문화재단 KCS 서울에서 진행되는 호크마 김의 개인전 ‘Eternal Spring, 온새미로: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는 작가와 나무 사이에서 오고 간 무언(無言)의 대화를 들려준다. 평면 13점과 영상 1점으로 구성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전시지만, 나무를 통해 세상의 본질과 영원에 가닿고자 하는 작가의 여정에서 마주친 작은 오두막처럼 아늑하고 비밀스럽게 다가온다.

 

나무를 통해 작가가 느꼈을 치유와 회복의 순간은,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 ‘바로 그 오두막에서 새순이 돋다’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장지 세 폭을 엮어 총 586cm에 달하는 대작으로, 영화 ‘오두막’의 서사에서 착안해 구상되었다. 영화 속에서 오두막은 주인공 매켄지의 딸이 유괴당한 비극적인 장소이지만, 이후 이곳으로 신비로운 초대를 받으며 내면의 아픔이 치유되는 경험을 한다.

‘바로 그 오두막에서, 새순이 돋다’의 한 부분(디테일)

작가는 이 서사를 자신이 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회복을 경험한 순간으로 확장한다. 시작과 끝이 연결된 듯 둥글진 형태로 전시되는 작품은 나무를 마주하는 관객을 포근히 감싸안는다. 생명의 경이를 간직한 채,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이며 관객을 응시하는 나무들. 길게 굽어진 종이를 따라 눈이 없는 나무들과 눈을 맞춰본다. 나무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들여다본 적이 있었을까.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침묵의 세계를 거닐며 그 안에서 나를, 세상을 발견한다.

그림자 같은 실루엣과 색면으로 표현된 나무의 정령들은 작가가 교감했을 나무의 실체를 즉각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여전히 나무의 옷을 입고 있지만, 덜어낼 것들을 덜어내서인지 어딘지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다. 구겨진 장지로 표현된 나무의 피부는 지나온 생의 흔적과 무수한 상처와 덧남, 치유를 겪으며 단단해진 나무의 시간을 눈으로 더듬어가도록 돕는다.

◆이름 없는 나무들의 초상

나무를 영적 존재로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는 대자연 속 모든 존재를 동등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북미 원주민의 자연관을 떠올린다. 이들에게 나무는 시간과 감정이 축적된 신성한 존재로, 각각 고유한 이름과 영혼을 지닌다고 여겨진다. 나무를 ‘형제’나 ‘자매’라 부르고, 반대로 사람에게 ‘자작나무’나 ‘떡갈나무’처럼 나무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생[生]으로 차오른 록[綠]’ (130.3x193.9cm)

전시장 안쪽에 자리한 호크마 김의 작은 그림들은 각 나무의 고유성을 더욱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어디선가 마주쳤을 이름 모를 나무들의 감정과 몸짓이 독사진처럼 포착되어 있어, 오랜 시간 그 앞에 머물며 보듬었을 작가의 시선을 상상하게 한다. 하나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러한 태도는 이름 없는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는 의례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조각 작품에 ‘파파,’ ‘조조,’ ‘모모’와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만약 나무에게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살아온 시간과 겪어낸 계절, 품고 있는 고요한 기억을 부르는 방식일 것이다.

나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호크마 김은 적막으로 가득한 겨울 풍경에서도 생의 온기를 느낀다. 겨울의 끝자락, 무채색의 공기 속에 홀로 서 있는 앙상한 나무도 사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숨 쉬고 있던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맨몸’). 마침내 새싹이 움트고 잎이 돋기 시작하면, 나무는 빛의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찬란한 생의 리듬 속에서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겨울과 봄 사이의 왈츠’).

◆나무의 가르침

호크마 김의 나무들을 보고 가로수들이 줄지은 찬란한 5월의 거리를 걷는다. 그의 그림 앞에 머문 시간만큼, 이름 모를 나무에 온 마음을 열고 눈을 맞춘다. 바라볼수록 그 흔들림과 색채가, 뿜어내는 향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나무와의 만남은 내면의 대화로 번져간다.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나무들은 어떠한 계몽적 가르침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내 안의 나를 마주하도록 부드럽게 이끌어준다. 어쩌면 호크마 김이 나무와 나눈 대화는 나무라는 거울을 통해 가능해진 자신과의 조용한 마주침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자라고 있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한 그루의 나무일 수도 있다. 나무의 가르침. 그것은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던 씨앗이 다시 대지 위로 솟아나게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생의 힘보다 강한 것은 없다.

신리사·미술사, 학고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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